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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물방울 기억

 

물방울 기억

                                     /최도선



인감印鑑證을 떼는데

나를 나로 인정받기까지는

내 지문指紋만이 증표래요



그런데 어쩌죠

첨단기계도 내 지문을 인식해주기 못하네요



물 티슈로 손가락 끝마디에 촉촉이 물을 먹였어요

그제야 겨우 흐릿하게 건져 올린 나의 바코드



나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나 아닌 저 물방울이라니



물에서 나온 나, 아니 우리

이제 뭍의 흙이 아닌

물로 돌아가야 할까 봐요

물방울이 우리를 기억하는 동안

-시집 ‘서른 아홉 나연씨’

 



 

지구생성 이후 수십 억 년을 지나 고생대에 이르러서야 바다에 사는 생물이 출현했다고 한다. 단세포생물에서 다세포생물로의 진화를 거쳐 육상으로 진출한 생물의 기원으로 볼 때 물은 생명의 원형이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존재증명이 한낱 지문에 의해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물의 최초 생명과학적 인식을 이끌어낸다. 우리에게는 태내의 양수 속을 떠다닌 300여 일의 심층기억이 유식학(唯識學)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에 함장돼 있다. 그러므로 화자는 나의 존재증명을 저 원초적 물의 이미지로 치환함으로써 단숨에 나로부터 우주로 확장되는 시상의 도약을 이루어낸다. 동시에 흙과 물이 둘이 아닌 不二를 말함으로서 존재의 무화를 은연중 암시하고 있다. 진정 ‘나’라고 특정할 만한 실체가 있는가? 결국 地, 水, 火, 風으로 흩어져 사라져 버릴 우리에게 찍힌 바코드는 그냥, 생명!일 뿐인 것을. /이정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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