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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행주산성의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장군의 한양도성 수복을 위해 주둔했던 행주산성에 대한 새로운 역사서술이 필요하게 되었다. 행주산성은 한양도성의 외사산(外四山) 덕양산에 있는 산성으로 덕양산성으로 불리웠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한창인 1593년 2월, 권율장군이 1만여 병력을 가지고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가 지휘하는 일본군 3만명과 대적하는 과정에서 조선군이 화약과 화살이 떨어지자 산성 안의 부녀자들이 행주치마에 돌을 담아와서 투석전을 벌여 승리하였다고 하여 행주산성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행주산성의 승리로 인하여 한양 도성을 탈환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하여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이처럼 역사적 의미가 있는 행주산성에 대해 특별한 고고학적 연구가 없었던지 역사학계와 지방자치단체는 현재 남아있는 모습만으로 토성(土城)이라고 규정해왔다.

하지만 고양시가 지난 2월에 행주산성에 대한 종합정비계획을 세우면서 불교문화재연구소에 발굴조사를 의뢰한 결과 발굴 두 달만에 돌로 축조된 3m 높이의 석성을 발견하였다. 석성의 유구만이 아니라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평가되는 기와편과 화살촉 그리고 수레바퀴 등 유물이 수심접이 발견되었다. 특히 기와편에서는 행(幸)자가 발견되기도 하여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와 같은 불교문화재연구소의 발굴 결과는 행주산성의 역사 서술과 지역의 문화유산 교육에 대한 대대적인 재정립이 필요하게 되었다. 실제로 행주산성은 한강 하구에 위치하여 삼국시대 가장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행주산성을 장악하는 것이야 말로 한강 유역을 장악하여 서해를 통해 중국과 교통하고, 한반도 전역을 통일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시대에 행주산성의 위상을 매우 높았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행주산성에서 삼국시대 유물이 크게 발견되지 않았고, 현재 토성만이 남아있어 행주산성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하지 못했다. 그런 현실에서 군사적으로 토성이 배해 훨씬 방어력이 높은 석성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행주산성의 위상과 역사적 의미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발굴조사 두달만에 나온 석성으로 인하여 지역 문화계는 크게 반기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성과만으로 만적하지 말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차분하게 발굴조사와 연구를 진행하여 삼국시대 행주산성의 본 모습을 확인하고, 이를 문화콘텐츠로 삼아 다양한 문화교육과 지역 문화정체성 재정립을 추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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