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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봄날의 추억

 

한밤중에 아이가 깨어 우유를 찾는다. 냉장고를 열었더니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우유곽이 사라졌다. 여러 식구가 살다보니 누군가가 먹고 말을 안 할 수도 있었다. 집 주위에 있는 수퍼나 다른 상점들은 당연히 문을 닫았고 당황한 나는 아이를 달래며 대신 물이라도 마시라고 했지만 순한 아이는 그냥 잔다고 하면서도 자꾸 마른침을 삼키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까운 가게 문을 두드리고 사정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우유 하나도 미리 사다 놓지 않고 자는 사람을 깨우느냐는 핀잔을 들을 것도 같고 너무 귀찮게 하는 것 같아 그냥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하는 수 없이 남편이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다행이 동네에 땡삐라는 별호를 가진 아저씨가 하는 구멍가게가 있었는데 자정을 넘겨 세시 정도까지 문을 열고 계시는 분이셨다. 늦은 밤에 먹을 것이나 담배가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가는 가게였는데 낮에 파는 매출보다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가격은 낮보다 조금 비싸게 파셨는데 아무도 불만을 갖지 않았다. 심야할증료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봄꽃이 지나 싶어도 자세히 보면 작은 들꽃이 핀다. 잠시 한가한 시간에 집을 나서니 골목마다 편의점이 있고 조금 외진 모퉁이를 지나면 편의점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깊은 밤에 아이가 깨어도 언제든지 사다줄 수가 있어 아이를 울리지 않아도 되고 낮에 잊고 준비하지 못했거나 갑자기 필요한 것이 있어도 쉽게 해결되는 참 편한 세상이다. 마침 목이 말라 음료수라도 마시려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많은 상품이 있다. 그 전에는 삼각김밥이나 빵이 아니면 사발면 종류만 생각했는데 혼자 밥 한 끼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정도였다. 1인 가구가 늘면서 혼밥족 혼술족이 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기는 했지만 거기에 맞춰 변화하는 세상이 왠지 낯설고 두렵기조차 하다.

봄이면 달래를 넣고 끓인 찌개나 돌나물에 들미나리를 넣어 슴슴하게 익은 물김치에 쑥버무리가 생각난다. 봄나물을 조물조물 무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고 행복했는데 이제는 점점 가족이 다 모여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드물다. 저마다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이 가족끼리도 얼굴 보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각각의 삶으로 내몰린다. 아이가 태어나 엄마 품에서 재롱을 부리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는다. 기저귀도 채 떼지 않은 아이가 보육시설에 맡겨지고 미각은 자연스럽게 단체급식에 길들여진다. 그러다보니 인스턴트에 익숙하고 무슨 음식이나 내림솜씨보다 요리정보에 의존하고 있어 음식 맛이 비슷비슷하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그 집 고유의 맛이 있었다. 그래서 누구네 집 무엇이 맛있고 어떤 음식을 잘 하는지 그 사람의 목소리나 뒤태만으로도 가까운 사람들은 누구인지 아는 것처럼 음식 맛으로도 익숙하게 알고 있었다. 정성껏 지은 한 끼의 맛을 잃고 사는 세대에게 청국장이나 봄나물의 맛은 얼마나 그리울까?

입맛까지 정형화 되고 대금을 지불하면 무엇이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은 과연 행복할지 의문이다. 가족을 위해 나물을 뜯고 찌개를 끓이며 돌아오는 가족을 기다리는 생활을 선택하려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모습은 시대극에서나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이 가족을 밥상에서 흩어놓는다. 봄날의 꽃잎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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