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창룡문]광화문(光化門)

경복궁에는 4개의 대문이 있다. 동은 건춘, 서는 영추, 북은 신무, 남은 광화문이다. ‘광화문(光化門)'은 이처럼 방위상 남쪽에 위치해 있지만 경복궁의 정문이자 왕실의 얼굴로 통한다. 또 조선의 중심은 한양이고, 한양의 중심은 경복궁이라면 광화문은 그런 경복궁의 상징이었다.

이런 광화문의 이름은 세종 7년(1425년)에 붙여졌다. 건립 당시 이름은 정문(正門)이라는 뜻에서 오문(午門)이라했다. 오문이 광화문으로 바뀌게 된 것은, “국왕의 덕(光)은 사방을 덮고, 바른 정치(化)는 만방에 미친다”는 뜻을 담은 당시 집현전 학자들이 건의에 의해서다. 그런가 하면 궁의 주인인 임금의 책무를 다해 줄 것을 기원한 광화에는 나라가 오래도록 태평무사하다는 의미, 즉 광천화일(光天化日)의 뜻도 담겨 있다.

하지만 국태민안을 빌며 세워진 광화문 자체는 아이러니 하게도 서있는 기간보다 무너진 기간이 더 길었다. 조선 태조 때인 1395년 경복궁 정문(正門)으로 건립됐으나 임진왜란 때 불탄 뒤 273년 동안 방치됐다가 1865년 경복궁 재건으로 옛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광화문의 애사(哀史)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제 때엔 조선총독부 청사를 짓는다는 구실로 1927년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 북쪽 현 국립민속박물관 자리로 강제 이전되고, 그나마 6·25 때 폭격을 맞아 돌로 된 부분만 남고 소실, 또 한 번의 비운을 맞기도 했다. 그 후 1968년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복원됐지만 목조 원형을 되찾기 위해 2006년 12월 다시 헐린 후 2년후인 2010년 현재의 모습을 찾았다.

광화문은 북쪽에 경복궁 근정전과 북악(北岳)의 주봉이 일직선으로 놓이는 서울의 중심답게 그 앞 광장은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파란의 역사를 함께한 장소다. 특히 지난 지난겨울 내내 천만 시민들이 함께 촛불을 밝힌 소통의 공간이었고 민주화의 산실 역할을 한 현장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600여 년 역사를 지닌 서울의 중심거리, 광화문으로 집무실을 옳기겠다는 약속을 실천할 모양이다. ‘준비되는 대로’라는 전제가 붙었지만 ‘광화’의 시작인 것 같아 기대가 크다./정준성 주필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