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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쌍계사 가는 길

 

휘파람 새소리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구례 화엄사 톨게이트를 벗어나고도 거듭 이어지는 길. 길 따라 오른쪽으로 서서히 드러나는 섬진강의 미소, 오월이다. 지금 막 꽃망울 터트리기 시작한 하얀 몸피 사이로 아카시아 향기가 뚝 뚝 떨어진다. 봄비 더불어 펼쳐지는 눈앞의 그림들은 자꾸 자동차를 멈추고 걸어보라, 걸어보라 재촉을 해왔다.

이미 젖기 시작한 섬진강. 그 말간 민낯 앞에서 봄비 밀어내는 우산은 사치라 생각했다. 차를 세우고 숫기 없는 찔레꽃 향을 지나 몇 걸음 걸어 오르자 산나물 몇 묶음의 인심이 내어놓은 가판대 위로 몇 봉지 뻥튀기 과자가 보이고 먼데 산이 시선 안으로 들어왔다. 우두커니 바라보는 먼 산, 굽이굽이 능선 사이로 물안개 일렁거리자 수년 전 물난리에 불어난 형산강을 마주하고 건네시던 아버지 말소리 드문드문 들리는 듯 했다.

“야야, 강은 흐르고 산은 저렇게 가만히 서 있는데 어째 사람들만 저래 바쁘게 오고 또 정신없이 가는지 모르겠다. 오늘 저 강물이 꼭 길 잃은 사람들 같제? 빨리 제 길 찾아야 강물도 조용할 낀데”

제 길 찾아 일렁이며 유유히 흐를 줄 아는 푸근한 섬진강을 따라 다시 출발한 길. 그 길옆으로 눈에 띄도록 꾹꾹 눌러 써진 표지판이 보였다.

‘당신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그 길을 생각하다 문득, 사월의 쌍계사 십리 벚꽃 길을 떠올려 보았다. 색깔로 무리지어 그 당당함과 화려함으로 뭇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폭죽처럼 터져 오르는 사월의 벚꽃 길. 마침내 전국을 들썩이게 하며 숱한 사람들 거리로 불러내어 한풀이 하듯 그 길 오르내리며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으니 어쩌면 그 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오늘 내가 마주한 이 오월의 길 또한 더없이 아름답다. 사월의 그 화려한 유명세를 벗어버리고도 이처럼 당당할 수 있다니. 벚나무 여린 잎으로 그늘을 키우느라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피워내는 찔레꽃, 아까시꽃. 이름 없는 키 낮은 야생화도 문턱 없이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 더하여 섬진강 물, 바람과 더불어 상생하며 유유히 함께 갈 줄 아는 야생 차밭의 풍요로움까지 곁에 두다니. 실로 그 옛날 양반들의 춤사위가 너풀거리게 만드는 묘한 오월의 19번 국도, 쌍계사 가는 길.

쌍계사 들기 전 왼쪽으로 와글거리는 화개장터를 들르는 일은 보너스가 아닐까 싶다. 멀리 이국에서 건너 온 터키의 젊은이가 내미는 아이스크림 한 입의 달콤함과 불 냄새 물씬 풍기는 닭 꼬치도 선택사항일 수 있겠다. 거침없이 곧게 뻗은 대나무에 눈길을 뺏기다가 아뿔사, 벌써 오후 5시 45분이라니. 시간이 너무 늦은 듯 해서 매표소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지금도 입장 가능한가요? 몇 시까지 나와야 하나요?”

“아 네, 싫으시면 안 나와도 됩니다. 뭐 그냥 머리를 깎으셔도 된다는 말입니다. 허허허허.”

들고 나는 건 모두 내 속의 뜻인 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또한 모두 내 안에 있는 걸, 또 길에다 대고 내 밖의 다른 것에다 대고 물어보았구나 생각하며 버섯향 풀향 온갖 향내 다 받아 안으며 절 입구 그 당당한 나무들과 나란히 쌍계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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