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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파도바의 스크로베니가(家)와 예배당

 

1305년 북이탈리아의 파도바라는 도시에는 ‘스크로베니 예배당’이 헌당되었다. 외관은 다소 단조로워 보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반전 드라마가 펼쳐지는데, 내부의 동서남부 벽면에는 예수와 마리아의 일생, 천당과 지옥의 모습, 7가지 미덕과 7가지 악덕이 그려져 있으며, 이는 당시 교회의 가르침을 총체적으로 시각화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무엇보다 이 공간이 지닌 위대함은 시각적 환영으로 인해 공간이 스스로 무한대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벽화들의 배경과 천장은 영롱한 푸른색으로 통일되게 채색되어 있고, 각 작품의 드라마틱한 상황들은 이 푸른색 배경으로 말미암아 우주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공간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도 매우 뛰어난 착시 효과가 연출되었는데, 아치형 벽면을 채운 각각의 벽화가 확장된 공간감을 형성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그 중 양쪽 벽면의 두 칸에는 가상의 궁륭과 창문이 그려져 있어 이를 삼차원 공간처럼 인지되도록 했다.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벽화를 그린 이는 르네상스의 거장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다. 르네상스 예술의 성격과 시작점에 대하여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조토로 인해 르네상스 미술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정도로 그는 혁신적이고도 천재적인 화가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런 명성과는 맞지 않게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그의 작품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나마 내려오는 몇몇 작품도 그의 제자가 제작했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제작한 것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는 형편이다. 다행이도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벽화는 (각종 문헌과 기록이 증명하듯이) 조토가 그린 것이 확실한 작품이며, 그것도 거장의 최고 전성기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예배당의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북이탈리아의 파도바에서 고리대금업으로 새롭게 부상했던 스크로베니 가(家)의 주문에 의하여 건축되었다는 점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직접 건축을 의뢰했던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처음에는 가족 예배실을 지을 생각이었다가, 건축이 진행되면서 점점 더 규모를 키우고자 욕심을 내었다고 한다. 그가 원했던 그림대로라면 예배당은 훨씬 커야 했고 높은 첨탑도 올려야했지만 주변 수도회의 반대로 이는 무산되었고, 대신 벽화를 담당한 화가에게 공간이 더욱 커 보이도록 그리라는 주문을 했었던 것 같다.

스크로베니 가문이 예배당을 건축한 것은 대중의 시선을 의식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스크로베니가는 고리대금업자에게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 속에서 사회적 지위상승을 갈망했고, 이 문제를 어느 정도는 돈으로 해결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추기경 보카시오가 교황 베네데토 11세로 등극하자 스크로베니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면죄권을 주는 교황의 교서를 받기도 한다.

건립의 계기야 어찌됐든, 스크로베니 예배당은 조토의 재능을 최대치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캔버스가 되었고, 덕분에 우리는 거장의 천재성에 감탄할 수 있게 되었다. 스크로베니 예배당을 바라보며 우리는 르네상스인들이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감지하기 시작했는지 알게 된다. 종교적 신비에 의해서만 마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광활한 세계를 원근법이라는 자연법칙을 발견하면서 심상의 눈이 아닌 실제 눈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스크로베니 가문의 행적에 대한 우리들의 고민 역시 이 지점에 존재한다. 이제 사람들은 세계를 자신들이 획득한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겼으며, 그만큼 금단의 영역은 줄어만 갔다. 더 이상 철저하게 접근이 금지된 힘과 근거 없는 믿음에 의해 자신의 운명을 내맡겨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아무런 제한 없이, 가능한 한 많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 봐도 좋은가? 이는 자본가들보다는 예술가들에게 훨씬 유리한 질문이 될 것이다. 결국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영광도 건축을 의뢰한 가문이 아닌 화가에게 훨씬 더 많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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