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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나무야, 나무야

 

아름답게 피던 꽃들이 지는가 싶어 봄이 가는구나 하는 마음에 아쉽기도 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파릇한 이파리에 섞여 멀리보기에도 탐스런 꽃들이 핀다. 들꽃은 알록달록 색색으로 피는데 나무에 피는 꽃은 대체로 하얀색이다. 특히나 우리 지역은 산이 많은 곳이라 숲이 우거지고 언제나 나무를 보며 산다. 그렇다보니 나무에 대한 친근함은 있으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산에는 물론 가까운 공원이나 건물 주변에도 나무를 심고 가꾸고 있다.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냥 그 자리에 있나보다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요즘 부쩍 미세먼지의 피해가 보도 되면서 나무에 관한 인식이 달라지고 하나하나 눈여겨보게 되면서 정이 간다.

몇 년 새 눈에 띄게 많이 보이는 나무 중 하나가 이팝나무다. 갓 지은 밥처럼 송알송알 이팝나무에 달린 꽃이 예쁘다. 허기진 배에 구부러진 등허리로 다랑논에 모를 심으면 언제쯤 추수를 하고 쌀이 되어 밥을 먹을 수 있을지 척박한 삶을 달래고자 애쓰던 위로이며 자기암시였을지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짠하다. 하긴 그보다 앞서 피는 조팝나무를 보며 찰기 없이 푸실푸실한 조밥이나마 실컷 먹고 싶었던 마음도 짐작이 간다. 그래도 그 나무들을 보며 민초들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살았으리라.

얼마 전 산길을 지나는데 숲속에 하얀 꽃이 언뜻언뜻 보인다. 이맘때면 층층이도 꽃을 피우는 시기라 가까운 야산에서도 쉽게 눈에 뜨인다. 층층이는 조금만 빛이 새어들어도 틈을 찾아 가지를 뻗고 키를 키운다. 하얀 꽃에 길어 보이는 꽃술이 독특한 층층이는 가까이 보면 연약한 꽃이 한데 어우러져 소담스러워 멀리서 보면 탐스럽기까지 하다. 가지가 옆으로 평평하게 퍼지며 자라는 모습이 층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여 층층이라고 하는지 몰라도 내가 보기엔 하늘까지 오르는 층층계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게다가 나뭇결이 곱고 색이 연해서 요즘엔 생활소품을 만들기도 한다지만 예전에는 팔만대장경의 목판으로 쓰였다고 한다. 외세의 침략으로 핍박받는 작고 힘없는 나라를 위해 부처님의 말씀을 새겨 국가의 안전과 평화를 도모했던 마음이 담길 정도로 층층이도 소중한 나무였다.

길 건너 보이는 건물에 바싹 붙어 나무를 심기에 제대로 살 수 있으려나 걱정을 했다. 그러나 그 걱정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나무는 하트 모양의 잎을 나풀거리며 바람머리에서 흔들리며 봄을 보내더니 하얀 너울을 쓰고 있다. 자세히 보니 하얀 꽃잎 네 장이 십자 모양으로 마주보고 있다. 십자나무라고도 부르는 산딸나무꽃이 봄을 배웅하고 섰다. 서양 사람들은 특히 기독교인들은 이 십자나무가 예수께서 못 박힌 십자가를 만든 나무라고 한다. 온 세상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인류에 대한 구원 계획을 완성하는 현장에 함께 했던 바로 그 나무다. 예수그리스도를 기리는 마음이 담겨있는 나무를 보면서 그들은 경건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가짐 또한 거룩하게 다지는 기회로 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지금까지 꽃만 보고 아름답다 하던 나무를 다시 보게 된다. 내일은 길 건너서 멀찍이 바라보지만 말고 나무에게 가까이 가고 싶다. 잠시라도 그 그늘에서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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