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거지고?
/김용락
김대중 정부 때
가난한 문인들에게 거금 1천만 원씩
생계보전비를 주던 제도가 있었다
주변 몇 사람이 나에게
그 돈은 분명 극빈 동화작가 권정생을 위한 돈이니
선생께 신청을 권하라고 했다
내가 선생의 오두막을 찾아가
조심스레 그 말을 꺼내자
내가 거지가!! 나에게 버럭 화를 내셨다
난생 처음 그런 모습을 보았다
같은 시기 도심에 5층 건물을 갖고
교사 마누라까지 돈을 버는 어떤 작가는
그 돈을 받아쓰고는
그 사실을 책 표지 버젓이
수상 경력으로 둔갑시켜 적어 넣었다
하늘에 계신 권정생 선생님 왈
봐라 내가 거지가?
-김용락 시집 ‘산수유나무’ / 문예미학사· 2016
한 때 이상한 권력에 의해 용락이 형이나 나를 포함한 많은 작가들이 이른 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찍혀 한바탕 시끄러웠다. 말하자면 권력이 정한 문예지원금을 안주는 리스트인 것이다. 이렇게 억울하고 속상한 때 나온 김용락 형의 새시집 ‘산수유나무’속에 등장한 ‘누가 거지고?’라는 시는 괜시리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시인은 시로 먹고 사는 것이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권정생 선생의 일갈을 소개한 이 시에서 문득 순서를 바꾸어 생각해 온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무엇을 못 받아 억울한 것이 아니라 안줘도 되는 시인으로 찍어주니, 내가 거지가 아니라고 국가가 공인해주니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을 바꾸라고, 마치 천국에 계신 권정생 선생님이 용락 형의 시를 통해 야단치는 듯 들린다. 시인이여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 그리고 시를 읽는 독자도 결코 거지의 밥풀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인은 유유자적하는 것이다.
/김윤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