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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시원한 한 줄기의 소나기를 기다리며

 

사람을 우습게 여길 때 ‘물로 본다’는 속어를 사용한다. 역대 대통령 중의 한 명도 전임 대통령과 비교해 ‘물00’라고 부르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기자들 사이에서는 ‘물 먹었다’는 표현이 있어와 지금도 자주 사용한다. 다른 기자가 터뜨린 특종을 놓쳤을 때 하는 말이다. 이럴 땐 데스크(부장)로부터 핀잔을 듣는다. 그래서 취재원들은 기자들에게 물을 따라주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돈을 물쓰듯 한다’는 속담도 있다. 돈을 아껴쓰지 않고 계획없이 펑펑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물이 그만큼 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같은 물이 요즘 너무 귀하다. 귀하다못해 농촌은 죽을 지경이다. 계속되는 가뭄이 큰 걱정이다. 자연재해 가운데 가장 넓은 지역에 걸쳐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게 한해(旱害)다.

논과 저수지 바닥이 마치 거북이등처럼 균열된 모습을 보면 농부가 아니더라도 가슴이 찢어질 정도다. 양수기로 겨우 물을 퍼올려 모내기를 했다 하더라도 노랗게 말라죽고 있다. 밭농사도 마찬가지다. 최악의 가뭄에다가 이른 더위까지 기승을 부리는 폭염마저 엄습했다. 답답한 마음에 신에게 힘을 빌리려 한다. 해마다 이럴 때면 물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곰곰 반성해보기도 한다. 성경에도 죄를 범한 유다에게 가뭄을 보내어 국가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했다는 말씀이 있다. 팔레스타인처럼 건조한 지역에서도 가뭄은 국가적인 재난이었다. 그래서 곡식들이 방아(發芽)하고 결실하기 위하여 시의적절하게 내리는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가뭄은 재앙이다. 물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 하고 대비를 하지 않은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UN이 정한 ‘물부족 국가’를 넘어 이제 ‘물기근 국가’로 향하고 있다. 3천여 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만 하더라도 한 주에 두 번만 수돗물이 제공된다.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어 매주 몇 번씩 물을 파는 물탱크 차를 불러서 물을 공급받기도 한다. “소변은 절대로 한 번 보고 내리지 않는다. 머리를 감거나 샤워한 물은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대야나 욕조에 보관했다가 변기를 내리거나 화장실 청소용으로 재사용한다.” 필리핀 가정생활의 철칙이다. 우리가 이같은 상황이라면 아마도 난리가 났을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들도 먹을 물이 없어 관정을 파는 게 국가적 사업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봉사단체들이 하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아프리카 국가의 관정 파주기다. 우리도 언제 이같은 일을 겪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110년만의 가뭄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이라고도 한다. 그건 사람들의 잘못도 많다. 대규모 개발과 무분별한 환경 파괴로 인해서 아마존 같은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있다. 자동차 등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대신 탄소 배출이 많아진다. 빙하는 녹아간다. 앞으로 물을 확보하기 위한 영토 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결국 인간의 탐욕과 무절제한 욕심의 결과일 수도 있다. 가뭄이라는 자연의 재해 앞에서 많은 것을 생각게 해주며 또 겸손히 우리 자신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가뭄이란 것도 단순히 비가 오지 않는다는 물리적 개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가뭄이다. 해갈의 기미가 없는 남북관계와 사드배치를 둘러싼 한미, 한중관계, 정쟁으로 뜨거운 정치권, 새 정부의 개혁드라이브를 기대했으나 청문회 정국으로 국회가 파행되는 등 어느 하나 가물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국민의 마음마저 가뭄 이상으로 온통 타들어가고 있다. 지금의 가뭄은 국민들의 심정일지도 모른다.

소나기는 고사하고 밤사이 찔끔 내린 몇 방울의 비소식이라도 듣고 싶은 게 국민들의 진정한 마음이다. 작금의 나라상황이 비를 애타게 기다리는 농부들의 마음이자, 우리들의 마음이다. 시원한 한 줄기의 소나기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내릴 날은 언제일지 기다려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소망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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