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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서 볼 수 없는 수원변천史

경기도청 이전에 얽힌 일화, 언론사의 정착과정 ‘솔깃’
수원화성 장안문 현판 글씨, 신풍초 역사적 사실 소개
3·1운동 당시 항쟁지였던 수원·제암리 교회 얘기 담아

 

세계문화유산 화성이 도시를 수놓으며 현대와 공존하고 있는 수원은 조선 후기 정조 때 화성이 건설되면서 조선을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했다.

이후 수원의 역사적 전통과 저력은 경부철도와 수여선과 수인선의 부설 및 권업모범장과 농림학교의 설치와 함께 공고해졌고 한국 농업의 메카로 자리잡으며 근대문화 도시로 급부상했다.

1910년에는 경기도청이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수원은 해방 이후 한국의 도시변천사를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한국 역사의 축소판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역사와 그와 함께한 이야기가 공존하는 수원은 정사(正史)만큼이나 가려진 야사(野史)도 풍부하다.

수원지역 언론사에서 60여년 몸담으며 경기도사, 수원시사, 경기예총사 편찬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한 이창식과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은 책이나 박물관에서 볼 수 없는 수원의 야사를 수집, 한권의 책으로 펴냈다.

책에는 3·1운동 당시 가장 격렬한 항쟁지였던 수원과 제암리 교회, 경기도청 이전에 얽힌 일화, 도정 이전 이후 언론사의 수원 정착과정, 수원지역 정계 거목들의 이야기 등 지금의 수원을 만든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

지금 가족여성회관으로 쓰이고 있는 이전 수원시청사 건립 뒷 이야기도 흥미롭다. 신청사 건립이 착수된 1954년은 6·25 한국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 복구작업이 진행중이었는데, 일본인이 많이 모여 산 남창동에 있는 하수로 처리가 골칫거리였다.

토사 유입을 막기 위해 돌창 좌우의 절개지에 화강암으로 쌓아올린 재래형 하수로로, 시는 절개지에 쌓아올린 돌덩이를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고민했다.

당시 청사 공사 설계사였던 조병원은 새로짓는 청사 외벽의 일부를 남창동 돌창의 겐치돌(견치석)을 이용하자고 제안했고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 지금까지 모양을 유지하며 수원의 역사 한켠을 장식하고 있다.

이 건물은 치밀한 설계와 함께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며 현재 등록문화재 598호로 지정돼 있다.

이 밖에 수원화성의 장안문 현판 글씨를 누가 썼는지, 화성행궁의 객사인 우화관에서 처음 설치된 것으로 알려진 신풍초등학교의 새로운 역사적 사실까지, 곳곳에 숨어있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수원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특히 수원의 역사와 함께해온 이창식 저자는 청소년적십자 자문위원 위촉장(1962), 경기지역 최초의 언론사인 경기연합일보의 전신인 인천신문 창간사진(1960) 등 직접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자료를 실어 이해를 돕는다.

이창식 저자는 “‘수원야사’를 통해 많은분들이 수원을 좀 더 이해하기를 바라고 저희의 작은 노력이 이 고장에 대한 또 다른 애정과 연구에 도음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고 전했다.

/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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