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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더위가 삼복을 방불케 한다. 하루 종일 불앞에 서서 일을 하자면 바깥바람이 그립다. 에어컨을 틀고 있어도 내가 있는 곳까지는 닿지도 않는다. 게다가 나는 지금까지 옷을 겹으로 입고 민소매나 반바지를 못 입는 솜씨라 그것도 어렵다. 하는 수 없이 냉수로 달래지만 찬물만 먹는 것이 해롭기도 하고 또 한계가 있다. 손님들도 오로지 시원한 음식만 찾고 늦게 온 사람은 오히려 독촉까지 한다. 이래저래 내 체온을 상승시킨다. 그래도 남들이 말하건대 행복한 비명이니 감사하라고 한다. 물론 감사하고 또 백번 감사할 일이다.

하루 종일 갇혀 살다보니 스트레스도 있고 동동 거리며 잔걸음을 치지만 운동부족이라 몇 해 전부터 새벽 운동을 다닌다. 밝아 오는 새벽하늘과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산과 바람 그리고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낮에 보는 풍경과는 많은 감회가 있다. 오가며 만나는 동네 어른들께 인사도 드리고 아우뻘 되는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말도 건넨다. 처음 만난 사람들도 이제는 하루만 못 봐도 안부가 궁금하다. 이렇게 서로의 마음에 깃을 들이고 살 수 있어 이 또한 낙이다.

새로운 희망과 에너지로 충전하고 돌아오는 길, 여느 때와는 다른 새 소리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새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보니 참새 한 마리가 끈적거리는 접착제처럼 보이는 것에 붙어 꼼짝을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갑자기 어떻게 하는 수도 없고 겁이 나기도 해서 찢어진 박스 채로 들고 집으로 와서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내가 박스를 붙들고 남편이 날개를 하나하나 떼어내는데 결국 나는 애처롭고 무서워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해서 새를 박스와 분리하는데 성공했지만 참새를 놓치고 말았다. 날지도 못하는 참새는 다친 날개를 끌고 다른 물건이 쌓인 틈으로 들어가 계속 울었다. 접착제를 닦아주고 날아갈 수 있을 때까지 보살펴 주려고 했지만 오히려 나를 경계한다. 굶어 죽을까봐 쌀을 조금씩 뿌려주고 울음소리를 듣는 것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좁은 틈에서 나와 조금씩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마음이 놓인다.

하루 일을 마치고 우리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면서 피곤하기도 하고 마음이 놓여서 그랬는지 양배추를 썰던 손이 미끄러지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 벌써 쓰라리다. 겹겹이 포개고 있던 양배추가 잘게 잘려지기 전 서로의 결속을 풀면서 그간 아무렇지도 않게 썰고 데치고 하던 나에게 징벌을 내린다. 상처는 순간이었지만 피가 멎지 않아 다른 손으로 누른 채 높이 들고 착실히 벌을 서고 나서야 밴드를 붙여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진다.

쓰레기를 분리하면서 폐지를 따로 모으다 멈칫하고 말았다. 찢어진 박스에 붙어 있는 새털이 번득 그 날을 떠올리게 한다. 무서워도 참고 발견 즉시 내가 떼어 주었으면 조금이라도 덜 고생을 시키지 않았나 하는 미안한 생각이 든다. 옆에서 보던 사람들은 어차피 못 살 테니 그냥 박스채로 버리라고 하던 말에 그래도 집으로 데리고 와서 보살피니 이제는 조금 높은 곳에 올라앉아 있는 모습을 간간이 보여주는데 내 손이 낳을 때쯤 참새도 날개가 아물어 훨훨 날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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