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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의미 있었던 동창들과의 칠갑산 산행

 

엊그제 한 해의 절반을 보내고 7월이 시작되는 1일 모처럼 청양 칠갑산으로 산행을 다녀왔다. ‘콩밭 매는 아낙네’의 동상이 자리한 곳이다. 수성고 20회 졸업생 45명의 친구들이 함께 했다. 관광버스 1대를 가득 메워 그동안의 산행치고 가장 많은 인원이었다. 이형순 친구(60·㈜맥스테크 대표이사)의 대한민국 100대 명산 완등을 축하하기 위해 열 일 제쳐놓고 많은 동기들이 모였다. 형순이는 2015년 1월4일 눈 내린 소백산을 첫 등반하기 시작해 지난 1일 청양 칠갑산을 끝으로 100대 명산 종주의 마침표를 찍었다. 수원은 물론 안양 대전 세종시에서 달려오고,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더 있어야 하나 깁스를 억지로 풀고 온 친구, 관광버스를 놓쳐 자신의 승용차로 직접 온 친구도 있었다. 친구들이 만들어 온 축하플래카드를 보며 형순이는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했다.

특히 친구의 100대 명산 완등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올해로 고교졸업 40주년을 기념하는 우정의 등반이어서 그 의미를 더했다. 산을 탄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도 이날만큼은 꼭 참가하겠다고 약속을 한 터라 일찌감치 일어나 동행했다. 우리나라에 100대 명산의 완등자들이 많이 있다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형순이는 꼭 2년5개월, 880일 동안 산행거리만 1천50㎞, 오른 산의 높이는 무려 9만6천787m에 달했다. 순수하게 산을 오르는 데만 480시간이 걸렸지만 영호남 지역과 제주 한라산 울릉도 성인봉까지 가려면 보통 2박3일 이상 소요되고, 버스왕복이 10여 시간씩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더욱이 58년생인 형순이가 58세의 나이에 소백산 칼바람을 맞으며 시작한 산행이었는데 60세인 이순(耳順)의 나이에 버킷리스트의 하나를 달성한 것이다. 아주 우연하게 시작한 100대 명산 완등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당초엔 1년에 10개씩 10년이나 걸릴까 생각했지만 20개, 30개, 50개의 산봉우리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학군장교 출신으로서의 오기가 발동됐다. 고교 동창들은 물론 아들과 동생들까지 때로는 동참해준 것이 격려가 돼 의지는 더욱 불타올랐다. 비가 억수처럼 내려 칠갑산 도립공원 주차장에서부터 우비를 입고 산행을 시작했다. ‘베적삼이 흠뻑 젖은 콩밭 매는 아낙네’가 아니라, 채 오르기도 전에, ‘콩밭을 매기도 전에’ 모두들 ‘물에 빠진 생쥐’였지만 친구들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워 보였다.

다행히 중턱에서부터 비가 좀 그치고 칠갑산 자락은 운무(雲霧)로 휘감겨 있어 자연도 100대 명산 완등을 축하해주는 듯 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던가. 그런데 40여 년 전 친구들은 역시 다른 것 같았다. 같이 참여한 친구들 모두 마치 자신들이 해낸 기쁨인 양 즐거워하고, 축하하는 축제의 자리가 됐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우정이었고, 또 고교시절로 돌아가 모처럼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몇 번이고 포기를 생각했을 정도로 힘든 그동안의 여정이었지만 친구 형순이의 도전 정신은 그래서 귀감으로 다가왔다.

내년이면 이순(耳順)을 지나 회갑(回甲)이다. 형순이의 100대 명산 완등은 친구들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다. 100만 명이나 태어나 가장 많은 숫자라는 그 유명한 ‘58년 개 띠’들. 어느덧 이제 ‘중늙은이(?)’들이 됐지만 형순이처럼 인생의 버킷리스트들을 하나하나 이뤄가며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뭔가를 남기는 삶이 됐으면 한다. 앞으로도 다가올 모든 일에 열정을 불태우고, 자아성취를 이루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설렘을 안고 높은 산을 올라가는 과정은 힘들지만 즐겁기도 하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이 고통과 기쁨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존재하기 마련이다. 100세를 바라보는 원로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말한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60대가 황금기였다고. 또 남에게 베풀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렇다. 형순아, 그리고 친구들아! 우정을 새롭게 다지고, 가슴 뿌듯한 성취감을 맛보았던 칠갑산. 영원히 잊지 못할 그곳에서의 천진난만한 모습처럼 그렇게 오래오래 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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