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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의 빈티지 집들 ‘옹기종기’ 초록 들판 수놓은 노란 꽃 군무에 탄성

이한숙 작가의 감성여행기
미국 윌리엄스버그

 

나에게는 낯선 도시 윌리엄스버그, 그 앞에 콜로니얼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도시 전체가 과거 미국의 식민시대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야외 역사 박물관이라고 하면 맞을까. 친구가 나를 위해 신중히 고른 여행지가 바로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먼저 초입의 관광안내소로 향했다. 차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버지니아 남부의 강렬한 햇빛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를 더 혼란스럽게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친구의 계획이었다.

여길 본 다음엔 어딜 가는 거냐고 묻자, 친구는 “여기 계속 있을건데, 제대로 보려면 닷새도 부족해”라고 답한다.

친구는 나와는 다른 생각의 틀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순간 친구에게 내 여행을 맡겨둔 것이 후회됐다. 따분한 역사지구에서 닷새라는 긴 시간을 머물 생각을 하니 머리에 지진이 났다. 아무리 역사를 좋아하는 그라지만, 이것은 나를 위해 짠 여행이 아닌가. 물론 잠깐은 흥미롭겠지.

그러나 내 나라 역사도 아니고 크게 흥미도 없는 미국 역사를 내가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볼 이유가 있나. 미국 역사 하나 이해하자고 이런 시골 구석에 박혀 내 피같은 휴가를 닷새나 허비하란 말인가. 머릿 속에서 아우성이 그치지 않았다. 아우성은 이내 친구에 대한 원망으로 변했다. 자연과 사람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알면서 어떻게 이런 여행을 기획한 거지.

미국 민속촌이라는 생각에 처음엔 실망

안내소에서 지도·일정표 받아보니
다채 행사에 선입견 사라지기 시작

한적한 개울과 집들의 모습에 평온
노란 미나리아재비꽃도 우리를 반겨

식민지 시대 마차·건물 어우러져
순식간에 타임머신 타고 온 듯 착각

 

 

 

 

몇해 전에 미국판 청학동인 아미쉬 마을에 간 적이 있다. 신앙적인 이유로 현대의 첨단문명을 거부한 채 18세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여기는 아미쉬 마을과는 기본 토대가 다르다. 실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교육이라는 특수 목적을 위해 조성된 조금 색다른 방식의 민속촌일 뿐이다.

그런 내 느낌을 알아챘는지, 친구가 말했다.

“기존 여행과 달라서 오히려 좋아하게 될 걸. Trust me!”

친구의 말에 반발이 올라왔지만 당장 어디로 도망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일단 의심을 거두고 친구가 내게 무엇을 보여주려고 한 것인지 믿어보기로 했다.

관광안내소에는 부활절 방학을 맞아 가족단위로 온 손님들이 많았다. 입장권 판매대에서 친구는 인터넷으로 등록한 것을 확인하고 방문자 명찰과 티켓을 받았다. 역사 지구 안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기에 입장료를 비롯해 많은 활동에 할인 혜택이 주어졌다.

이곳에서 우리는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 마을 지도와 안내문, 그리고 일정표도 받았다. 날마다 새롭게 제공되는 일정표에는 당일 어떤 행사들이 진행되는지가 적혀있었다. 이 두가지 자료를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내 선입견이 많이 무너져내렸다.

우리가 방문한 4월 11일 화요일 일정표에는 마을 설명회 뿐 아니라 ‘초콜릿 제조업자의 비밀’, ‘화포 쏘기’, ‘윌리엄스버그의 희귀종 동물들’과 같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과, ‘고고학 랩 : 쓰레기인가 보물인가’, ‘전문가와 함께 하는 18세기 지하저장고 발굴 작업’과 같이 이곳 역사지구의 발굴과 복원 과정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행사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안내돼 있었다. 친구가 말한대로 이 마을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닷새도 부족할 것 같았다.

3시가 훨씬 넘은 시간, 남은 시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살펴봤다. 그 중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총독 관저에서 진행되는 저녁촛불콘서트였다. 관심을 보이는 내게 친구가 반색하며 말했다.

 


“그럴 줄 알고 미리 예약을 해뒀지”

친구의 센스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안내소 건물 안에 있는 영화관에서는 1775년과 1781년 사이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가 어떻게 혁명의 도시가 되었는지를 혁명 전야 하루에 집중해서 보여주는 다큐, ‘Williamsburg-The Story of Patriot’가 상영되고 있었다. 콘서트까지 넉넉한 시간이 남아서이기도 했지만, 이곳 투어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그 영화를 보는 것 이상으로 적절한 활동도 없어보였다.

혁명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 버지니아의 한 지주를 주인공으로 삼아 영화는 펼쳐졌다. 보스턴 차 사건을 계기로 본국의 과다한 세금 징수에 반발하게된 식민지 사람들이 영국의 식민지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독립을 위해 싸울 것이냐 갑론을박하는 모습도 흥미진진하게 다뤘다.

혼란의 소용돌이를 살아내던 당대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 도시가 단순히 식민지 삶을 보존한 역사지구가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도시는 갈등을 가슴에 품고 저마다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새 세상을 향해 내외적인 혁명을 치러낸 역사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는 패트릭 헨리, 토마스 제퍼슨, 조지 워싱턴과 같은 위대한 인물들 뿐 아니라, 불확실한 당대를 살던 모든 사람들의 혁명의 도시였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눈에 다가오는 것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왜 친구가 이곳을 이번 여행지로 잡았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것도 같았다. 이제 이 여행이 얼마나 좋은 여행이 될지는 내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혁명의 시대를 살아낸 당대 사람들의 마음을 리얼 타임으로 체험하려면 무엇보다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했다. 친구는 영리하게도 이미 내게 공을 던져 줬던 것이다.

안내소에서 마을까지 셔틀이 운행 중이었지만 우리는 걷기로 했다. 퇴색미가 느껴지는 붉은 벽돌 굴다리를 건너고 졸졸졸 흐르는 개울도 지났다. 식민지 시대 집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나무 막대기로 얼기설기 담을 친 초록 들판에는 샛노란 들꽃들이 가득했다. 미나리아재비 꽃이었다. 영어 이름(Buttercup)은 훨씬 낭만적이다. 왜 그런 이름이 지어졌는지 묻는 내게 친구는 꽃 하나를 따서 자기 턱 밑에 들이밀었다.

“이것 봐. 노란 꽃이 반사되는 거 보이지? 이게 보이면 그 사람이 버터처럼 달콤한 사람이란 뜻이야”

친구가 내 턱에도 꽃을 갖다 댔다. 우리는 두 주먹을 마주치며 좋아했다.

버터컵은 이후 닷새동안 어딜 가든 지천이었다. 앙증맞은 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노란 세상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매번 탄성이 저절로 터졌다.

 

윌리엄스버그 마을로 들어서서 우리가 제일 먼저 만난 곳은 총독 관저(Governor’s Palace)였다. 전통복장을 한 마부가 이끄는 마차가 종종 우리 앞을 지나갔다. 마차 위에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마차도 마구도, 그리고 마차가 지나는 거리와, 건물도 모두 식민시대 모습 그대로였다. 순식간에 타임머신을 타고 낯선 시대로 날아든 기분이었다.

오늘은 샌드위치 하나 사서 총독 관저 앞 초록 가든, 일명 팔라스그린(Palace Green)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그런 다음 촛불콘서트에 가서 고음악을 즐기고, 그런 다음 천천히 밤 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가면 된다.

친구가 샌드위치를 사러간 동안 나는 팔라스그린에 입고있던 자켓을 넓게 펼치고 그 위에 누웠다. 어둠에게 서서히 길을 비켜주는 햇살이 눈에 가득 담겼다. 내가 좋아하는 저녁 어스름, 이 시간의 햇살이 좋은 이유는 제 성질을 누그러뜨리고 사물을 조금씩 감싸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자리한 인생의 시간대와 지금의 이 시간대가 서로 닮은 꼴인 것도 반가웠다. 조금 더 놀 수 있는 여유가 있고 돌아갈 집이 있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마냥 슬픔만은 아닌 시간. 카오스 같은 속을 굳이 단도리하지 않아도 이런 잠시의 무익함은 기막힌 평온을 선물한다. 눈의 각도가 달라져서, 보이는 것들도 더 다정하다.

 

눈의 앵글이 달라지면 보이는 세상도 다르게 보이고, 안 보이던 세상도 눈에 들어온다. 물리적인 세상만 그런 건 아니다. 내가 마주하는 상대도, 나 자신도 그렇다. 이미 거기 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세상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그것을 아는 것이 내겐 진정한 배움이고 성장이다.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도 그런 배움과 성장에 대한 본능적 그리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리=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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