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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하면 여럿이 있다. 그러나 윤이상만큼 파란의 생을 살며 국제 음악계에 영향을 미친 이는 없다. 1960년대부터 독일에 체류한 그는 기악곡 101곡, 성악곡 17곡 등 총 118곡을 지었고 1995년 세상을 떠난 지 22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한국 음악의 전통과 정서, 동양적 사상 그리고 서양의 현대음악기법을 융화시킨 위대한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가야금 연주의 농현 기법을 비브라토로 바꿔 표현하고, 민요와 판소리에서 끊어지지 않고 이어서 내는 기법을 첼로나 바이올린 연주에 사용한 천재성을 인정받아 ‘동서양을 잇는 중계자 역할을 한 음악가’라는 지위를 얻어 더욱 그렇다. 뿌리와 과정이 다른 두 세계의 문화 사이에서 창조의 고뇌를 끌어안은 세계적인 현대 음악가로 평가받은 그는 이런 공로로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훈장(1988), 함부르크 자유예술원 공로상(1992) 등을 받았다. 독일 자어브뤼켄 방송은 그가 영면한 1995년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의 반열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조국으로 부터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혹독할 만큼 박해 받았다. 그의 불행은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사형 선고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그는 중앙정보부에 의해 독일에서 국내로 납치돼 고문을 받으며 2년 가까이 교도소에 감금되는 고초를 겪었다. 독일 유학생 시절 북한에 있는 강서고분의 ‘사신도’를 직접 보겠다며 방북한 것이 원인이었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지휘자 카라얀 등 세계적 음악가 200명이 탄원서를 제출한 것에 힘입어 다시 독일로 돌아왔으나 추방이라는 ‘딱지’때문에 죽을 때까지 이념에 시달리며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루이제 린저는 그런 그를 ‘상처입은 용’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가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마침 엊그제 독일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있는 그의 묘소를 방문, 재평가의 희망을 피력했다고 한다. 문화계 ‘원조 블랙리스트’로 불리며 철저히 외면당했던 그의 음악세계가 국내에서 제대로 된 평가의 기회를 얻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정준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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