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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폐지’ 만능시대(?)

 

문교부는 1968년 7월15일 중학입시제도를 폐지하고 무시험 추첨제를 실시한다는 새로운 중학교 입시제도를 발표했다. 과열된 중학입시제도의 문제점으로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 가중, 교육불신 사조의 대두·인간교육의 결여·사도(師道) 타락 등 교육의 비정상화 등을 이유로 내걸었다. 평준화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무시험 추첨제는 1969년도에 서울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되었고, 1970년도에는 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전주에서, 1971년도에는 전국으로 확대 실시되었다. 나 역시 이른바 ‘뺑뺑이 1세대’로 은행알을 배정 학생 수만큼 넣은 수동식 추첨기를 뺑뺑 돌려 수원북중학교에 배정받았다. 수원북중 수성중 수원중 삼일중 이렇게 단 4개의 학교뿐인 시절이었다.

이 과정에서 전국 37개 중학교가 ‘명문’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폐교됐다. 경기 서울 경복 용산 부산 경북중학교 등과 경기도에서는 인천중학교다. 인천중학교는 폐지 45년만인 2001년 같은 이름으로 부활하기는 했지만 그 정통성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중학교 평준화의 이면에는 1964년 12월 서울시내 전기 중학입시에서 문제가 된 ‘무즙파동’에서 기인한다. ‘엿을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는 효소’를 묻는 문제에 정답인 디아스타제 이외에 무즙도 정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법원에서 승소한 사건이다. 무즙을 정답으로 썼던 학생 38명이 경기중학교 등에 다시 입학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나아가 1968년 ‘창칼파동’이 일어나 경기중학교 입시에서 ‘창칼을 바르게 쓰고 있는 그림’ 문제에 대한 정답을 두 개로 채점한데서 비롯되었다. ‘무즙파동’, ‘창칼파동’은 초등학교 교육의 정상화와 입시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고 결국 중학교 입학시험 폐지로 이어진 것이다. 이후 초등학교에서의 과외열기와 치맛바람이 줄어들고 사교육비 부담도 감소했으며, 학교 간 격차가 해소됐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지만 이는 고등학교 입시경쟁으로 옮겨갔다. 결국 1974년 서울을 시작으로 고교마저 학교별 입시가 폐지되고 연합고사를 통해 학교를 고르게 배정하는 평준화 정책이 실시됐다. 서울지역 고교로의 진학 길이 또 막혀버렸다. 일부 눈치 빠른 부모들은 이미 중학교 때 서울로 전학시키기도 했다. 나는 또다시 제도의 첫 적용자가 돼 수원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하필 ‘58년 개 띠’들이 상급학교 입학할 때만 되면 제도가 바뀌어 ‘X대통령의 아들 때문에 그랬다더라~’ 하는 허무맹랑한 괴담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듯하다.

요즘 또 자립형사립고와 외국어고교 국제고 등의 폐지문제로 시끄럽다. 문재인 정부와 일부 진보교육감이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반고의 정상화’다. 자사고가 고교 평준화 체제를 위협하는 수직적 고교 서열화를 고착화한다는 논리다. 이들 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경쟁이 초등학교 단계부터 나타나 초·중학교가 자사고 입시를 위해 국·영·수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획일화된 입시 위주 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문제로 삼는다. 이에 반해 자사고 존치론자들은 교육의 다양성 확보를 강조한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다양한 교육제도가 있어야 하는데, 정부가 오히려 획일화와 하향 평준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래서 폐지보다는 설립목적에 맞게 학사 운영을 개선토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명문 중학교라고 해서,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모여 있다고 해서 이들을 무슨 죄인(?) 취급하며 밀어붙이기식으로 폐지한다는 건 군사정권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과거 정권에서의 3사관학교 세무대 폐지와 최근 사법시험 폐지에 대해서도 아직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요즘도 경찰대 폐지론이 고개를 들고 심지어 서울대학교와 사관학교 폐지론마저 나돌고 있다. 폐지 대상기관들이 물론 일정 부분 폐해도 있을 수 있지만 무조건 없앤다면 나중에그 책임은 누가 지겠는가. 폐지만이 능사는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각종 제도를 바꿔 국민들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르게 해서는 더욱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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