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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사진관의 절규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관은 1907년 8월 서울 소공동에서 문을 연 ‘천연당사진관’이다. 당대의 유명 서화가인 김규진이 자신의 집 행랑 뜰에 개업 한 이 사진관은 처음부터 문전성시를 이루며 장안의 화제였다. 초기엔 고객이 왕실 인사와 부유층, 외국인으로 한정 되더니 개업 다음해 1월 한 달 동안 1천여 명이 이용할 정도로 번창 했다. 당시 쌀 한 가마 값이 4원 정도였고 중판의 경우 1원 이상을 받았는데도 이 정도였다. 이렇다 보니 외상으로 거래된 사진대금의 체납액이 쌓여 큰 골치를 앓았다는 기록도 있다. 천연당사진관이 대한매일신보에 다음과 같은 광고를 낸 것이 그 것이다.

“사회 각 방면과 학교,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우리 동포형제께서 본 사진관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하거니와, 사진 대금을 마치 술값 외상 진 것처럼 여겨 해가 바뀌어도 갚지 않는 곳이 수백 군데에 이르러 수습할 길이 없고, 수입처에서 재료값을 달라고 독촉이 심해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즉, 빨리 대금을 보내주시기를 바라오며, 앞으로는 우리 동포들에게 사진 대금을 선금으로, 또는 절반 이상을 먼저 받고 영수증을 교부한 다음 촬영해주겠으니 그리 아시오.”

예나 지금이나 사진은 개인의 기록일 뿐 아니라 당시의 사회상을 알 수 있는 역사의 보고다. 한 장의 사진이 시대를 웅변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카메라가 대중화되기 전 사진관은 이러한 개인 역사의 기록장 역할도 했다.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나 휴대폰 등이 널리 보급되어 손님들이 사진을 더 잘 아는 시대가 되어 설자리를 점점 잃어 가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그랬다. 아직도 증명사진을 비롯 일반인들의 기념사진, 기록사진, 결혼식 사진, 장례식 사진 등 다양한 영역에서 명맥을 유지 하고 있으나 소수 사진관만이 해당된다.

그 중심에서 고통 받는 동네 사진관 업자들이 최근 “이력서 사진 부착금지 방침을 철회하라”고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사진관 전체 매출의 70%에 달하는 증명사진 촬영이 없어질 경우 생존마저 위협받는다는 그들의 절규에 대해 과연 정부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해결책을 내 놓을지 궁금하다.

/정준성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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