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전쟁 기억 위로 희망이 피는 곳 머지 않은 곳에 평화가 있었다

⑧ 연천 10~12코스

 

 

삼국시대엔 삼국의 국경지대였고 근세기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비극인 한국전쟁에선 격전지의 무대였던 연천은 전쟁의 포성이 멈추지 않은 땅이었다. 지금도 북한과 맞닿아 분단의 아픔을 눈앞의 현실로 직시하게 하는 땅이기도 하다. 과거의 상흔(傷痕)과 분단의 긴장감, 전쟁의 기억 위로 피어오르는 희망이 공존하는 연천은 이제 서서히 ‘자연과 평화, 생명이 공존하는 땅’으로 발돋움하고자 한다. 평화누리길 연천코스는 그러한 지역적 특성을 고스란히 안아 조용하면서도 청정한 안보관광지를 대변하는 곳이다.

연천코스는 평화누리길 전체 191km 중 경기도와 강원도를 잇는 85km 구간으로 10코스 고랑포길, 11코스 임진적벽길, 12코스 통일이음길로 이어진다.



 

 

 

 

 

임진적벽길(11코스) 생명력 뽐내는 DMZ 중심을 걷다

당포성 오르면 동두천 산봉이 ‘눈앞’
용암과 시간이 빚은 주상절리 ‘장관’


평화누리길 11코스이자 연천의 두 번째 코스인 ‘임진적벽길’은 대립하고 있는 한 민족의 허리춤인 DMZ 중심을 걷는 길이다. 숭의전지~당포성~주상절리~임진교~군남홍수조절지로 이어지는 19km이다.

6·25 한국전쟁으로 남북 삶의 터전은 폐허가 됐지만, 서로 등을 돌려 가꾸지 않은 땅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지천에 피어나 생명력을 뽐내고 있다. 숭의전지에서 2차선 도로를 따라가면 삼화교 건너 우측 둔덕에 자리한 성곽이 보이는데 바로 당포성이다. 4세기 말 고구려가 백제·신라 연합군에 밀려 한강 지역에서 패퇴하면서 방어선을 구축한 곳이다. 성곽을 오르면 임진강 너머 파주와 동두천의 산봉들이 눈 안에 들어온다.

당포성을 나오면 둑길에서 강변으로 시원하게 뻗고 있는 거대한 강줄기를 따라 주상절리가 펼쳐져 있다.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동이리 주상절리는 높이 40m, 길이 1.5km에 이르는 웅장한 면모를 자랑하며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다양한 절경을 만들어낸다. 용암과 시간이 빚은 신비한 조각품인 주상절리를 구경하다보면 강변길에 다다른다. 강변길에는 임진강이 한눈에 잡히는 꽃동산이 마련돼 있어 지중해 휴양지를 연상케 한다.

그 후에는 종착지점인 군남홍수조절지가 보인다. 군남홍수조절지는 임진강에서 우리가 갈 수 있는 최상류에 위치해 있다. 임진강 물길도 이곳에서 끝이 나 발아래로 가로막힌 물길이 북녘 산협(山峽)으로 사라진다.

 

 

 



고랑포길(10코스) 남북 경계 임진강 기대어 걷다

사미천 물길 옆 철조망·지뢰표시 ‘숙연’
황오리·고라니 있는 야생동물 낙원도


임진강은 한때 남과 북을 이으며 굽이쳐 흐르는 생명의 강이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남과 북의 경계가 되는 강이 됐다. 물길은 여전히 내달리며 이야기를 만들고 강 따라 사람들은 대를 이어 삶을 꾸려간다. 연천코스는 지금도 북한과 맞닿아 분단의 아픔을 눈앞의 현실로 직시하게 하는 땅이다. 과거의 상흔과 분단의 긴장감, 전쟁의 기억 위로 피어오르는 희망이 어우르는 연천코스에선 산과 물이 조화를 이뤄 고즈넉한 풍경을 보며 자연을 즐길 수 있다. 평화누리길 연천 코스의 시작인 ‘고랑포길(10코스)’은 임진강에 기대어 열려 있다. 원당리 장남교에서 시작해 장남면사무소~노고리 비룡대교 입구~학곡리 고인돌~숭의전지로 이어지는 20km이다.

임진강을 건너 장남면사무소를 지나면 번지점프대가 있는 캠핑장을 지나게 된다. 이곳을 빠져나가면 맑은 물줄기를 가진 사미천을 만나게 되는데, 청정한 물길 옆 겹겹이 둘러쳐진 철조망과 지뢰표시가 분위기를 다소 숙연하게 만든다. 뒤로는 백학면에서 흘러나오는 석장천이 있고 발길을 그쪽으로 향하면 야생동물 낙원이 펼쳐진다. 운이 좋으면 겨울 철새 황오리의 날갯짓과 길 사이사이 뛰어노는 고라니를 볼 수 있다.

이어 371번 지방도가 지나는 비룡대교 앞에는 장승들과 구석기인 모형들이 도란도란 모여 있다. 바람에 따라 느릿느릿 걷다보면 제방길 사이 갈대숲이 눈에 띈다. 조금 더 움직여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 담벼락에 아기자기한 벽화들이 부지런히 걸어온 이들의 지친 얼굴을 살포시 웃음 짓게 한다. 또 마을 중심에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학곡리 고인돌이 자리하고 있다. 돌무더기를 벗어나 산길로 늘어서면 탁 트인 능선 초입에 전망대가 하나 놓여있다. 이후부터는 숭의전과 임진강, 강 건너편 삼화리의 논밭에 닿는다. 그렇게 평화누리길 10코스, 고랑포길은 끝이 난다.

 

 

 


통일이음길(12코스) 유난히 길고 아픈 길을 걷다

율동전투 승전 기념 ‘필리핀 참전비’
북녘땅 달리고 싶은 경원선 열차도


평화누리길 마지막 12코스인 ‘통일이음길’은 전쟁의 잔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길이다.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 새겨진 아픈 역사를 따라 걷기에 유난히 길고 느리다. 평화이음길이라는 이름조차 전쟁의 아픔을 치유하고, 통일로 이어주는 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붙여졌다.

군남홍수조절지~로하스파크~옥계마을~신망리역~도신리 방아다리~신탄리역 구간으로 연천코스 중 가장 긴 24km이다.

이 길은 군남홍수조절지 입구를 뒤로 한 북쪽 산길에서 시작된다. 호젓한 오솔길을 지나 산길을 내려가면 현대인의 건강과 환경을 위한 농촌휴양단지가 등장한다. 그 아래로는 옥계마을이 있는데, 아기자기한 벽화와 가지런한 장독대가 보여 심신에 안정을 준다. 마을을 빠져나와 78번 국도에 이르면 필리핀 참전비를 만난다.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한 필리핀군이 중공군과 가장 큰 전투를 벌였던 율동전투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비다. 이곳에서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져보는 이도 있다.

다음으로는 연천읍을 흐르는 차탄천이 나오는데 차탄천변에는 자전거길도 조성돼 있어 모양새가 아주 시원스럽다. 1시간 간격으로 경원선 열차도 지나간다. 통일이 되면 함경도 원산까지 달릴 열차지만 지금은 철도 중단점까지만 오르내린다. 지난 2012년 11월 20일 철도중단점이 신탄리역에서 백마고지역으로 옮겨가면서 DMZ 철도는 경원선의 북쪽 끝 백마고지역까지 달린다.

그렇게 평화누리길 12개 코스는 마지막 종점인 경원선 신탄리역에서 긴 여정을 맺는다.

이처럼 평화누리길 연천코스를 걷노라면 대한민국이 종전이 아닌 정전의 땅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이 길엔 고요한 바다와 맑은 강, 깊은 숲과 여린 들꽃이 있고 경계의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동식물이 아름게 점 쉬고 있다. 평화누리길은 아름답다. 이 길에는 고요한 바다와 맑게 빛나는 강이 있고, 깊은 숲과 여린 들꽃이 있으며, 경계의 땅에서 ‘삶’을 건지는 사람들과 선한 눈빛의 동물들이 있다.

그러면서 이 아름다운 길은 우리에게 숙제 하나를 남긴다. 분단의 아픔을, 대결과 갈등을 대표하던 이 길이 이제는 평화의 공간으로, 희망의 땅으로 만들어져야 함을 말없이 전한다. 전쟁의 기억 위를 걸으며, 평화의 꽃이 필 그날을 꿈꾸게 하는 길, 바로 평화누리길이다.

/이연우기자 27yw@

/사진=경기관광공사·연천군 제공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