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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오해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사드 배치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을 내세워 국회의 동의나 환경영향평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문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서 “새 정부가 사드 문제를 번복할 의사를 가지고 그런 절차를 밟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버려도 좋다.”면서 “한국은 미국과 같은 민주국가이므로 민주적, 절차적 정당성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달 29일 문대통령이 북한의 ICBM 발사 대응 조치로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배치’를 지시하자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여권에서도 “사드 배치는 북핵 억지에 효과가 없다.”는 반대 목소리가 많다. 청와대는 사드 임시배치에 대한 반대 여론에 대해 “주민을 설득하고 투명하게 과정을 공유해가면서 배치할 것”이라고 한다. ‘임시’라는 단서가 달렸지만 배치를 되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환경영향평가에서 부적절 결론이 나오는 경우, “사드는 배치하되 다른 곳에 배치한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국가적으로 매우 부적절한 혼선이 야기되고 있다. 정부의 교체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은 이해하지만 이 과정에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오해가 개재되어 있다. 사드배치 문제와 똑같은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문제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의 공정률은 28.8%이고, 지금까지 1조 6천억 원의 공사비가 집행되었다. 그런데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할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해서, 3개월간 여론을 수렴하여 이에 대한 의견을 내놓을 예정이다. 최종 결정을 위원회나 배심원단이 하는지 정부가 하는지에 대한 혼선이 있었지만, 어쨌든 김지형 위원장은 “사회적 논의 과정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것이 위원회에 맡겨진 임무”라며 “위원회는 절차적 정의를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이미 결정된 사안은 사후 절차적 정당성을 얻기 어려워

절차적 정의는 맥락에 따라 절차적 정당성,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말로도 쓰인다. 그런데 절차적 정의란 무엇인가? 인류는 늘 정의를 추구해 왔지만 구체적 문제에서 무엇이 정의인지는 합의하기 어렵다. 현대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며, 그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이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문제에 대하여 공동체에서 결론을 내리기 어렵고, 구성원들은 결론에 쉽게 승복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차원의 접근방식인 절차적 정의가 강조되는 것이다. 즉 어떤 문제를 결정하는 절차에만 먼저 합의하고, 그 절차를 충실히 따랐다면 내용적으로 의견을 달리해도 결과에 승복하자는 것이 절차적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내용적 결론을 전제하지 않고 결정방식만 논의하므로 합의 가능성이 조금은 높아진다. 그렇다면 사드배치 문제에 있어 사후에 환경영향 평가를 한다고 해서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있는 상태에서 어떤 결론이 나도 반대의견이 없어질 리 만무다. 원전 건설 문제도 정부가 이미 건설중단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공론화위원회가 반대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반대결론을 내린들 정부가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향후 모든 국가적 문제들은 절차에 합의한 후 추진해야

환경영향평가나 공론화위원회 두 사례 모두 사전에 합의한 절차가 아니다. 더구나 이 사후절차에 누가 참여하고 어떤 기준으로 결론을 내리는지 국민이 결정했거나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논의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내린 결론에 반대 의견을 가졌던 사람들이 승복할 리 없다. 절차적 정당성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만 더 키울 수 있다. 물론 사드배치와 원전건설 모두 애당초 결정과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결정되어 진행 중인 사안이 사후에 더구나 일방적으로 정한 절차에 따라 새롭게 정당성이 도출되기 어렵다. 정부가 바뀌었으므로 결론을 뒤집거나 정치적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춰질 뿐이다. 따라서 사후절차라는 한계는 있지만, 그 절차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먼저 이루고 진행했어야 절차적 정당성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더 바람직한 것은 두 가지 문제 모두 이전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고, 현 정부는 앞으로 진행될 모든 국가적 문제들에서 사전에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여 이런 사후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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