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이준구의 世上萬事]‘갑질과 완장문화’ 청산

 

박찬주 육군 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 여파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른 바 갑질을 행한 당사자들이야 제기된 의혹에 대해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겠지만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면 상당 부분 사실로 추정된다. 군대에 보냈거나 앞으로 보낼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오르는 일이다. 육군 대장의 공관에 근무한다면 모두가 편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강아지에게나 채워야 할 방울처럼 손목시계형 호출벨을 채웠다. 뜨거운 떡을 일일이 손으로 뗐다. 사령관이 연습한 골프공이나 줍는다. 군대생활을 해본 부모들은 자식이 노예에 버금가는 이같은 생활을 했다고 상상하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개도 부잣집 개가 낫다느니, 훈련도 없지 않느냐니 하는 시대를 착각한 일부 허망한 목소리에는 하도 기가 차서 말조차 안 나온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수석보좌관들에게 전 부처 차원에서 갑질문화를 점검하라고 지시했을까. 우리의 갑질문화는 관존민비 사상이 엄격했던 조선시대부터 뿌리가 깊었다. 아니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대국인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황제에게 알현하러 갔던 문화가 그렇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양반의 행패가 심했다. 실학자 박지원이 쓴 소설 ‘양반전’은 귀족들의 갑질행태를 잘 보여준다. 과거시험에 합격하면 온갖 재물을 챙기고, 노비는 물론 양민까지 맘대로 부려 먹는다. 이웃집 소를 제 것처럼 사용하고 박 장군 부부가 공관병에게 텃밭일을 시키듯 동네 사람들에게 자기 집 농사일도 시킨다. 양반의 계집종 겁탈은 비일비재했다. 이렇듯 지배층 내부에서도 갑질이 이미 오래전부터 행해져왔다.

게다가 갑질문화의 산물인 완장은 또 어떤가. 서자로 자란 차지철은 어릴 때 온순하고 내성적이었으나 박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맡으면서 오만방자해졌다. 장관들을 부하처럼 다루고 국무총리조차 얕봤다. 군의 새카만 선배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마저 무시했다. 박정희가 채워준 혁명군 완장의 위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차지철의 잦은 월권에 심한 불쾌감을 느낀 김재규는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차지철에게 권총을 발사했지만 차지철은 박 전 대통령을 남겨두고 혼자 화장실로 도망갔다가 45세의 젊은 나이에 최후를 맞았다. 갑질을 후회할 새도 없었다.

작가 윤흥길의 대표적 소설 ‘완장’에 등장하는 종술이도 있다. 1980년대 초 전북 익산의 시골 갑부 최씨는 동네 건달 종술에게 양어장을 관리하라고 노란색 완장을 채워줬다. 무단으로 낚시질하던 도시에서 온 남녀들에게 기합을 주고, 한밤에 몰래 물고기를 잡던 친구와 그 아들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한다. 이 맛에 신이 난 종술은 읍내에 갈 때조차 완장을 두르고 활보하면서 그 힘과 권력을 실컷 만끽한다. 마침내 완장의 힘에 도취된 나머지 고용주 일행의 낚시까지 막으려다 결국 쫓겨난다.

이처럼 완장이라는 물건을 차면 왠지 모르게 위에서 군림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군사문화가 판을 치던 70년대에도 완장의 위세는 대단했다. 등교 시 교문에는 학생주임과 함께 ‘선도부’ ‘기율부’란 완장을 두른 학생들이 서 있어 위압감을 주었다. ‘주번’ 완장을 차고 으시대는 친구도 있었다.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처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국가들에서도 나치 완장 두른 부역자들의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일제강점기에 헌병보조원이랍시고 양민들을 괴롭힌 것도 바로 이 완장 찬 조선인들이었다. 6·25 때는 붉은 완장 찬 인민군 부역자들의 횡포도 대단했다.

국민소득 3만불이면 뭐 하겠는가.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갑질 청산 없이는 동반성장은 요원한 얘기다. 5만~10만불의 선진국처럼 사회구조와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다 소용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갑질과 완장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술집 작부 부월이는 종술에게 “진정한 권력자는 완장을 차지 않는다”고 충고했다. 술집 작부가 던진 이 외침을 이 시대의 알량한 권력자들은 귀담아 들어야 할 때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