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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달인 위에 달인

 

어느 고을에 어찌나 중매를 잘 하는지 일단 말만 꺼내면 성사가 되는 요즘 말로 하면 중매의 달인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통하면 아무리 어려운 혼처라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며느리를 들이거나 딸을 시집을 보내게 되어 모든 사람이 혼담을 놓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루는 아들 혼삿길이 막막한 집에서 중매를 부탁했지요. 신랑감은 일 년 내내 글공부를 한다고 책을 붙들고 있지만 아직 낙방거사를 못 면해 노모 혼자 꾸리는 살림에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그 시절 몰락한 양반가의 여인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도 있었고 그 지경에 체면치레도 해야 했고 모든 것이 암울한 집이었습니다.

매파는 아무 걱정 말라고 큰 소리를 치고 곧장 일을 추진했습니다. 조금 떨어진 고을에 사는 형편은 꽤 넉넉한데 신분이 중인이라 어떻게든 양반과 줄을 대기 위해 목을 빼는 사람으로 그에게 과년한 딸이 하나 있었지요. 매파는 그럴 듯 하게 신랑감과 그 집을 소개합니다.

“대대로 벼슬이나 가풍이 또한 모두가 받들어 공경하며/ 신랑이야 옥골선풍에 학식은 공맹이라 장원급제가 눈앞이요,/ 집안에는 없는 게 없을 정도라// 그릇이 저절로 다니는 개다리소반에/ 달음박질치는 바가지에/ 밤이면 별이 총총한 방에….”

매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좋은 혼처 놓칠까봐 혼인날부터 잡고 초스피드로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세상엔 달인이 중매쟁이 한 사람밖에 없으란 법이 있습니까? 변죽 좋은 중매쟁이도 꼼짝 못하게 하는 사람도 있지요.

빼어난 용모에 품행이 반듯해도 시집보낼 꿈을 못 꾸는 명문가의 규수가 있었답니다. 선천적 장애가 있었던 규수는 시 서화에 능했고 거기에 솜씨도 좋아 자수와 바느질을 하며 여러 가지 혼숫감을 장만하고 이를 보는 부모님은 수심이 더 깊어갔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규수가 부모님께 어느 댁 도령을 신랑감으로 점찍어 두었으니 매파를 놓아 달라고 했고 그대로 했지요. 신랑감은 누구나 욕심은 내지만 함부로 걸음을 하는 것도 어려운 명문거족의 외아들이라 매파도 슬쩍 꽁무니를 빼려다 헛걸음 하는 셈 치고 심부름을 하고 신랑 집에서 며느릿감의 용모나 범절을 알아보기 위해 집안사람을 방물장수를 딸려 보냈습니다.

방안에 아리따운 규수가 앉아 바느질을 하는데 어찌나 조신하던지 가위나 실패 등 바느질 도구를 이리 저리 찾지 않고 양쪽 무릎 밑에서 간직하고 쓸 정도로 얌전하고 음성 또한 기러기 소리라 배필과 백년해로할 짝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다녀온 사람의 말에 치성을 드려 낳은 아들의 천생배필이라며 기쁜 마음으로 육례 갖추었다.

새며느리가 앉은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참이나 지난 후였지만 여인으로서의 지혜와 부덕이 선천적 장애를 덮고도 남을 정도였으니 모두가 칭송해마지 않았다. 비록 남보다 못한 환경에 처해 있다 해서 자신의 처지를 탓하며 불평과 한탄으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에게 그 어떠한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극복해야 할 난관은 있을 것이고 타고난 결점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이를 뛰어넘을 때 반드시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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