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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우리네 전통농경문화, 예서 ‘한 눈에’

전통농기구 만드는 신용철씨
화룡시에서 쟁기·소수레 등 제작

 

화룡시 진달래촌의 한 전통가옥에 들어서면 한동안 그 자리를 뜨지 못한다. 이것 저것 모두 다 한번씩 만져보고 싶고 개인 소장하고픈 마음도 굴뚝같이 차오르는 것이 동년시절 장난감에 집착하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머리속을 스친다.

논밭을 갈아엎을 때 사용했던 쟁기, 농경생활의 필수였던 소수레, 바람을 리용해 탈곡한 곡식의 이물질을 제거했던 풍차, 물의 힘으로 바퀴를 돌려 곡식을 찧는 방아였던 물레방아...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은 농기구가 집안 곳곳에 진렬되어 있는 모습이 마치 전통 농기구 박물관을 련상케 했다. 특히 현대식 농기계만 보면서 자라온 젊은이들에게는 타임머신을 타고 아득히 먼 과거의 생산현장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까지 들게 해 묘한 기분을 안겨주고 있었다.

이 농기구들은 모두 화룡시 룡성진 룡성촌 청년 신용철(34세)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 7월 18일, 그를 만나 전통농기구 제작에 깃든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980년대 이후에 출생한, 그것도 촌에서 자란 저도 알고보니 이름모를 농기구들이 많더라구요.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움과 애한이 담긴 전통농기구들이 소리없이 잊혀져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저 나름대로 자료를 수집해 직접 재현해 보았습니다.”

1960년, 전 주적으로 펼쳐진 농기구개혁과 함께 잇따른 농업기계화의 빠른 추진으로 조상들이 처절한 생존경쟁에서 창조해낸 전통농기구들은 하나 둘 자연스레 우리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기억에서조차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신용철씨의 과감한 결단성은 새삼 돋보였다.

어릴적 아버지에게서 어깨너머로 익혀온 기술은 농기구 제작에 뛰여든 그에게 작은 바탕이 되였다. ‘변화와 혁신만이 살길’이라고 과감히 시작한 일, 하지만 80년대 이전의 농경문화를 직접 접해보지 못한 그로써는 얕은 력사지식이 큰 장애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정말 까마득했죠. 그래도 촌민들이 있어 불행중 다행이였습니다. 오늘날 200가지에 달하는 목기품을 만들 수 있게 된 데는 촌민들의 뜨거운 지지가 뒤받침했기 때문입니다.”

전통농기구의 명칭, 사용방법이며 그 속에 깃든 조상들의 지혜까지, 집집마다 찾아가 전해들은 이야기들을 두고 신용철씨는 이보다 더 확실한 력사자료는 없을거라며 촌민들을 향한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잊혀져가는 전통농경문화를 보존하고 조상들의 농경생활을 재현함으로써 기성세대에게는 옛 향수를 느낄 수 있게 하고 무엇보다 신세대들이 우리 조상들의 땀이 밴 농기구들을 통해 부지런하고 건강한 삶의 자세와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신용철씨의 바램이다.

전통이 자원이 되는 시대, 체험교육의 장에서 이제 곧 메뉴로 등장할 목기품공예는 교육과 문화산업에서 전통이 활용되는 단적인 례로도 될수 있다는 신용철씨의 미래지향적인 희망사항은 우리에게 새로운 계시를 안겨주었다.

단지 공예품 제작에 그치는 것이 아닌 공예품으로 탄생하기 이전에 선조들의 생활도구였던 우리의 것- 전통농기구, 그 종류와 쓰임새뿐만 아니라 소의 코가 헐지 않게 하기 위해 나무로 된 코뚜레를 사용했던 선조들의 지혜까지도 함께 알아갔으면 하는 바램이 그에게서만 그치지 않기를 바래본다./글·사진 민미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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