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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수원화성의 사직단(上)

 

농업은 조선 시대의 주요 국가산업이었다. 농경은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땅을 주관하는 토지의 신 사(社)와 곡물을 주관하는 곡식의 신 직(稷)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단(壇)을 각각 만들었다. 한양의 사직단은 서쪽 인왕산 줄기 끝에 위치하여 경복궁을 바라보게 설계되어있다. 그래서인지 남향보다는 동남향을 하고 있어 지형을 따라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도시계획을 다루고 있는 주요문헌인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편에 ‘좌묘우사 전조후시(左廟右社 前朝後市)’라 하여 남향을 한 통치자의 입장에서 좌측(東)에 종묘를 우측(西)에는 사직단을 서쪽에 설치하였다. 종묘는 한양 이외의 도시에는 설치되지 않았고, 대신 공자묘(향교)와 사직단을 지방의 주요 도시에 설치하였다. 단 한양 외 유일하게 설치된 곳이 남한산성 행궁인데 이는 전쟁 시 임시 도성이 되기 때문이다.

사직단 위치는 1789년 수원 신읍을 이전할 때 팔달산의 서쪽 기슭으로 하였다. 중국 북경의 사직단은 자금성의 천안문 내부에 있고, 한양의 사직단은 비록 궁궐 내는 아니지만 성안에 있고 또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수원의 사직단은 산 너머에 설치하여 수원 시내가 보이지 않았다.

수원행궁의 팔달산을 배산으로 하고 좌측은 화서문(숙지산)이 있고, 우측은 현 향교가 있는 곳이다. 좌묘우사의 관례에 따른다면 향교를 화서문 근처에 설치하고, 사직단을 현 향교 자리에 설치하는 것이 타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향교를 사직단 자리에 설치함으로써 사직단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엉뚱하게 산 뒤쪽으로 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향교가 행궁의 우측(팔달산 남쪽)으로 가게 된 이유를 추정하면, 옛 수원이 남쪽에 있어 이사를 하지 못한 지역민을 위하여 그들로부터 가까운 곳에 설치한 배려하고 본다.

향교에 자리를 내준 사직단을 어디에 설치해야 하는가에 많은 고심이 있었다고 본다. 정조의 생각을 다 읽을 수는 없지만 건축가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사직단을 향교와 나란히 설치할 수 없고, 그렇다고 반대쪽인 좌측(화서문)으로도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중립적으로 팔달산의 서쪽에 설치하여 ‘서쪽(우측) 배치’라는 위안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성곽을 쌓게 되자 사직단이 안 보이는 것에 더하여 성곽의 밖이 되어 심리적으로 더 멀어져 보이게 되었을 것이다.

사직단 이전에 대한 계획은 을묘년(1795) 혜경궁의 방문이 끝나고 멈추었던 성곽공사가 대대적으로 일어나면서 시작된다. 그해 7월13일 정조에게 사직단의 터에 대하여 수원유수 조심태가 ‘지금의 사직단 터는 기우뚱하데 기울어 비가 오면 무너져 내릴 염려가 있는 곳이며 이번 비로 서북쪽 모퉁이가 무너져 새로운 장소를 수원에 사는 노인들과 같이 돌아다니며 찾은 곳이 광교산의 기슭입니다.’라고 보고를 한다. 이는 이전이 확정되고 장소를 보고하는 내용으로, 이미 정조와 이전에 대한 교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월18일 공사의 시작을 알리는 고유제에서 옮기는 원인을 정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동안은 채석의 영향과 땅이 기울여져 있어 이전이 불가피하다고 하였지만 여기서는 ‘기존 사직단의 위치가 맞지 않아 맞는 곳을 찾아 새로 설치한다.’라고 한다. 이는 급하게 신읍을 조성하다 보니 합리적인 도시계획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장면이 된다.

사직단 새 위치는 이전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옮기는 것이므로 이보다 훨씬 좋은 자리 또 향교에 양보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보다 더 풍수적으로 뛰어난 곳이 선정되어야 하였다. 이곳은 광교산의 줄기 아래서 남향을 하고 유천(수원천)과 수원화성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광교산에서 시작하는 물은 북으로는 안양천이 되어 한강으로 흐르고 남으로는 유천과 황구지천이 되어 사도세자가 있는 화산과 진위 및 평택을 거처 서해안으로 흐르게 된다. 물의 근원이 바로 광교산이고 그래서 이곳을 예부터 수원(水原)이라 했듯이 이산을 주산으로 배치하는 것은 팔달산에 비교할 바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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