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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화가와 후원인… 40년 ‘예술 브로맨스’가 있는 곳
민경화 기자  |  mkh@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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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8월 22일  20:11:16   전자신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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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환 관장, 젊은 날 취미로 동양화 수집
그림 실력 출중한 박생광 화가 후원 나서
작가 작고후에도 작품 사들여 100점 넘어

2001년 운영하던 돈사 개조… 미술관 개관
2008년 영덕동으로 이사해 미술관 신축

박생광뿐 아니라 전혁림 작품도 다수 소장
그의 후원에 작가들 작품 세계 꽃피워


용인 ‘이영미술관’을 찾아서

사립미술관은 일반적으로 개인 소장가가 모았던 다양한 작가의 작품들을 소개하거나 작가로 활동했던 가족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곤 한다.

용인에 위치한 이영미술관은 보다 색다른 이유로 지어졌다. 한 천재작가와 후원자의 특별한 인연이 그것이다.

집 가까이에 있던 표구사를 오다가다 들르며 취미로 동양화를 사모았던 김이환 이영미술관장은 우연히 한국화가 박생광을 알게됐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박 작가의 독특한 작품세계에 매료된 김이환 관장은 박생광 작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인연을 이어간다.

마흔셋의 김이환과 일흔넷의 박생광이 처음 만난 1977년 수유리 작업실에서 이영미술관의 역사가 시작된다.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에 위치한 이영미술관은 2만3천㎡ 가량의 부지에 솔공원을 비롯해, 모래놀이터, 옹기마을 등 아이들의 발길을 붙잡는 놀이터가 가득하다. 100여 그루의 조형 소나무, 200년생 목백일홍, 할미꽃 등 100여종의 야생화, 3만 그루의 연산홍 단지, 300여개의 큰 항아리, 정낭 등 제주도 민속물, 한용진의 막돌다섯을 비롯한 조각 작품들과 어린이 놀이를 위한 트로이 목마 등이 곳곳에 배치돼 아름다운 야외조각 공원을 형성하고 있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임하고 대기업 계열사 임원을 역임한 김이환 관장은 1979년부터 1994년까지 돼지 돈사를 운영했다. 2001년 6월 돈사를 개조해 미술관을 개관한 이후 2008년 영덕동으로 이사해 미술관을 신축했다.

3천 마리 이상의 돼지를 쳤던 김이환 관장은 양돈 사업만으로도 노후걱정을 하지 않을 만큼 여유가 있었지만, 미술관 건립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다. “전생에 두 작가에게 빚을 많이 져서 그 빚을 갚는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밝힌 김이환 관장은 그동안 모았던 박생광, 전혁림 작가들의 작품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미술관을 건립을 결정했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왼편에 전시장이 관람객을 맞는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구성된 전시장은 각각 상설전시와 기획전시가 이어지고 있으며 지하 1층은 박생광, 전혁림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각각 동양화와 서양화를 전공한 두 작가는 서로 다른 장르지만 화려한 색감을 바탕으로 작업, 햇빛이 들지 들지 않는 지하 전시장을 화사하게 수놓고 있다.

특히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소재로 한 박생광의 ‘명성황후’ 작품은 생생한 묘사와 더불어 강렬한 색감이 어우러져 시선을 사로잡는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들은 표현양식에 있어서 자연형태를 재현하는 구상수법과 사물의 원형을 기하학적으로 탐구하는 추상수법을 아울러 쓰고 있어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자아낸다.

민족혼의 화가라 불리는 내고 박생광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김이환 관장의 공이 크다.
 

   
 
   
 


젊은 시절 동양화에 관심이 많았던 김 관장은 흑모란 그림이 출중하다는 소리를 듣고 무작정 수유리에 있는 박생광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3평 남짓한 좁은 방에 온갖 화구를 늘어놓고 키가 160cm도 안되는 작은 체구의 화가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칠십 평생 한길을 걸어온 삶에 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그는 박생광 작가와의 첫만남을 이같이 회상했다.

이윽고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다”는 작가의 한마디에 김 관장은 작업에 대한 전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비용을 대고 대신 그림을 받는 식으로 후원 했지만 후원을 명목으로 시세 차익을 노려 투자한다는 구설도 생겼다. 1984년 개인전 이후 박 작가에게 관심갖는 화랑이 많아지자 김 관장은 손을 뗐고, 이후 박생광 작가가 작고한 후 미술관을 열면서 그림들을 사들였다.

이영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박생광 작가의 작품은 100여점에 달한다. 국내에서 박생광 작가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지만, 김이환 관장은 소장품 개수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강조한다. 미처 빛을 보지 못했던 천재작가가 찬란한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게 도왔고, 그 업적들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내고 박생광의 예술이 김이환 덕에 꽃을 피웠다”고 평가될 만큼 김이환과 박생광의 만남은 한국 미술계에 간과할 수 없는 업적으로 남았다. 실제로 ‘명성황후’, ‘무당’, ‘무속’, ‘전봉준’ 등 박생광 작가의 대표작들은 그가 작고하기 전 8년간 발표됐으며, 이는 김 관장이 박 작가를 돕던 시기와 일치한다. 상설전시실에서는 이같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영미술관은 박생광 뿐 아니라 전혁림 작가의 작품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 따라서 박생광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민족 魂의 화가 박생광’(2004)을 비롯해 박생광 미디어 전시 ‘108번의 삶과 죽음’(2005), 전혁림 작고 1주기 기념전 ‘나는 전혁림이다’(2011), 전혁림 탄생 100년 특별기념전 ‘백년의 꿈’(2015) 등 두 작가의 작품세계를 심도있게 살펴볼 수 있는 전시들을 개최하고 있다.

김 관장은 탁월한 재능을 가졌던 노화가가 붓을 놓는게 안타까워 후원인을 자처했고 그의 작품들을 전시할 수 있는 미술관도 열었다. “계획하고 한 일은 아니지만, 살다보니 운명이 그렇게 이끌었다”는 그의 말에서 미술관에 숨어있을 두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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