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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역적의 자손들

 

요즘 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 안부를 묻는 전화를 받는다. 시국이 뒤숭숭하니 혹시 전쟁이라도 나지 않겠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한창 더운 여름철 지나고 날씨가 선들 해지면 조상님 산소 벌초 걱정에 일손을 부탁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올해는 윤달이 들어 추석도 늦어지고 장마도 뒤로 물렸는지 8월을 매일 빗속에 살다 보니 이제 비 좀 그만 왔으면 좋겠다고 야단이다.

장마가 걷히고 더위도 서서히 물러갈 즈음 뭉게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피서객보다 벌초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은 피서객은 연령층이 대체로 낮은 편이고 가족 단위 또는 친구로 보이는 또래 집단이 대부분인 데 비해 조상님 산소를 찾는 사람들은 대체로 연령층이 주로 노년층이고 젊은 사람들을 보기 힘들다.

몇 해를 두고 형제분이 어울려 벌초하러 다니던 분들이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고 있기에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힘에 겨워하시던 말씀으로 미루어 납골묘를 조성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들리는 말은 함께 다니시던 형제분 중 한 분이 더 거동할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악화돼 하는 수 없이 파묘를 하기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뒤따르는 말이 요즘 젊은 사람들은 벌초하겠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더러 집안 어른 성화에 따라오기는 해도 남자라고 해서 낫질을 하거나 예초기 작업을 할 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 관리가 어려운 산소는 고총이 되느니 의논 끝에 정리하는 추세라고 한다.

세상이 변했으니 풍속도 변하기 마련이지만 예전에는 조상을 잘 받들어야 복을 받는다고 해서 제사도 정성껏 지내고 산소를 보살피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와석종신’이라는 말은 사람이 받은 여러 가지 복 중에 가장 마지막에 누리는 복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서 할 일을 다 한 사람이 늙어 자손들 배웅을 받으며 죽은 다음 조상들 선영 아래 차례로 묻히는 것마저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어느 집안이나 ‘대동금초’에는 타관에 나가 살던 사람들이 주렁주렁 자라나는 자식들을 거느리고 모여들었다.

지금 아이들은 집에서 받들어 키우기도 하지만 학교와 학원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일정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여가도 없다. 그렇게 자라고 어른이 되어도 힘든 일은 피하고 싶어 하고 불편한 것은 조금도 참으려 하지 않는다.

거기에 매장보다는 화장을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묘소 관리는 점점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이래저래 점점 가족 납골묘를 만들고 있는데 나중에는 그 또한 관리가 이루어질지도 의문이다.

대역 죄인에게 내려지던 ‘부관참시’는 이미 예삿일이 된 지금 파묘 대행이 돈벌이가 된다는 말도 공공연히 하고 있다. 그 방법에 대해서도 결코 알려진 방법이 아닌 그들만의 비법이 있다고 하며 더는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이제는 단독주택보다는 공동주택을 선호하는 취향이라 그런지는 한껏 만들어 낸 것이 납골당이나 가족 납골묘가 대세니 ‘공동유택’이라는 신조어가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다.

살아서도 집이 없는 사람에게 죽어서 ‘공동유택’이라도 차례가 올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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