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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이 세상에 처음 선 보인 것은 190년 전인 1827년 영국에서다. 의사인 존워커라는 사람이 지금과 거의 비슷한 성냥을 만들어 특허를 받은 것이 시초로 기록되어 있어서다. 우리나라엔 1880년 김홍집과 함께 수신사로 일본에 갔던 개화승 이동인이 귀국할 때 처음으로 성냥을 가지고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다. 일반에게 생활용품으로 대중화 된 것은 인천개항과 더불어 제물포에 국내 최초의 성냥공장이 세워지면서 부터다.

1900년 러시아 대장성이 발행한 ‘조선에 관한 기록’이란 보고서에는 1886년 제물포에 외국인들이 성냥공장을 세웠는데, 값싼 일본제 성냥의 범람으로 얼마 되지않아 생산을 중단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수록되어있다. 그러나 이 기록에는 공장의 정확한 위치와 상호, 규모 등 없다. 단지 한국 최초의 성냥공장이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기록에 남아 있는 인천 최초의 성냥공장은 1917년 10월 지금의 동구 금창동에 세워진 조선인촌주식회사(朝鮮燐寸株式會社)다. 당시 인천공장에는 남자직공이 150명, 여자직공이 300명으로 합계 450명 정도 근무 한 것으로 알려있고 그 외 주변 가정에서의 부업으로 성냥갑 만들기에 종사하는 사람이 약 2천500명에 달했을 정도로 번창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곧 대중화의 바람을 타고 부산 등 전국적으로 공장설립 붐이 일었다. 이후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전국에 300여 개 공장이 가동됐을 정도로 성냥산업이 번성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상표로는 유엔표, 아리랑표, 비사표, 기린표, 향로표 등이 있다. 한때 군가처럼 유행했던 “인천에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로 시작하는 노래도 당시에 나왔다.

80년대 후반 가스라이터 사용이 일반화하고 값싼 중국산 성냥이 밀려오면서 국내 성냥산업도 사양길에 들어섰다. 공장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급기야 얼마 전 전국에서 유일하게 성냥을 생산하던 김해 경남산업공사(기린표)마저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인천에서 시작된 성냥생산의 불씨가 마지막 불꽃을 사르고 103년 만에 꺼진 것이다. 세월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한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실감나게 한다./정준성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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