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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내 마음의 가을은...

 

“들창너머 바람을/ 볼 순 없어도/ 댓잎소리 귓가에/ 사각대는 가을 들머리/ 산 너머의 가을은/ 알 순 없어도/ 갈잎 소리 온 누리에/ 이미 찾아 왔구나/ 가을은 바람으로 일어서고/ 바람은 잎새 되어 밀려드는데/ 아--- 얼마나 마음을 씻어야/ 바람소리 가을소리 귀가 열릴까/ 뜨락가득 달빛을/ 볼 순 없어도/ 솔잎 사이 그림자/ 너울대는 가을 들머리/ 내 마음의 가을은/ 알 순 없어도 (중략)“

우연한 기회에 취미생활을 하게 된 ‘올드보이스 콰이어’라는 합창단에서 요즘 연습하는 ‘가을이 와서야’라는 노랫말이다. 9월로 접어들면서 바뀌는 계절의 모습이 몸으로 느껴져 멜로디와 가사가 가슴에 더 와 닿는다. 덕분에 연습 때 마다 마음이 ‘쨘-’해지면서 목소리도 제법 잘 난다. 합창단에선 이곡 이외에도 10여곡 넘게 연습에 피치를 올리고 있다. 21일 정기공연 날짜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절에 취한 감정만 앞 세워 그런지 완성도를 높이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물론 입단 3개월 차 새내기인 나에 비해 함께 모여 소리하는 40여명의 단원 모두가 그러하지 않지만 적어도 나 만큼은 그렇다.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러다 실수 하는 것은 아닌지“ 울렁증마저 꿈틀대고 ’성취와 만족‘이라는 고지도 멀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이내 ”음원을 더 열심히 들어야지“하며 자신을 독려 해 보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나의 이런 맘을 간파라도 한 것 일까? 최근엔 단원들을 이끄는 지휘자의 걱정스런 독려가 부쩍 잦아져 미안함마저 커지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위안도 생긴다. ”아 - 나만 부족 한 것이 아닌가 보네?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야지...“

어떤 일이든 목표를 향해 가는 데는 이처럼 많은 우여 곡절이 따른다. 인생의 여정 속에 항상 이런 것들이 존재하는 우리의 삶은 더욱 그렇다. 그중에서도 인생의 절반을 넘긴 세대들은 마음에 가을이 물든면 후회와 아쉬운 지난 일들이 특히 생각난다. 나이 든 사람들이 ‘가을은 풍성함 속에서 빈곤을 인지하는 센티멘털의 계절’이라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을에 이런저런 생각이 더해져 뭔가 축 가라앉는 느낌이 들 때 도 있다. 내면을 향한 손짓에 울림이 없다면 영락없는 우울 증세다. 하지만 자아에 대한 내밀한감각을 강하고 섬세하게 일깨워 주는 게 분명한 것으로 봐선 우울증과 확연히 다르다.

가을이 생각을 많이 들게 하는 것은 사람을 그리워 하는 감정도 한몫한다. 인간관계에 대한 여러 감흥이 필연적으로 일어나면 생각은 과거로의 여행을 진하게 하게 마련 이어서다.

그러나 가을에 생각이 많은 것은 무엇보다 자신과 깊은 곳에서의 대화가 부단히 이루어져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자기만 아는 내면의 깊숙한 또 다른 나와 만나, 지나옴을 반추하고 앞으로의 남은 나날을 이야기 할 때 그 어떤 누구도 현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는가. 또 어느 누구고 생각이 많아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을이 주는 울림도 있다. 사심과 차별 없이 자기를 보듬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게 그것이다. 생각은 공허하고 심난하지만 몸 안에나직이 웅크리고 있는 이 같은 ‘힘’을 발견하면 텅 빈 가슴마저 꽉 찬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죽어야만 헤어질 영육 간 동반자로의 깨달음도 얻게 되며 복잡한 세상 인간관계에서 오는 미움과 질투, 이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도 더불어 하게 된다. 가을 낙엽처럼 메마른 가슴을 적셔주는 매혹적 울림이다.

가을날 떨어지는 낙엽에서 얻는 것도 있다. 타고난 지성과 지혜도 시간이란 무게에 치이면 휴지처럼 나뒹굴고, 쌓아놓은 명예와 부귀도 가는 세월의 빈 뜨락 앞에선 쭉정이가 된다는 사실의 깨달음 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비록 가을이지만 세상의 복잡한 일,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질투와 미움이 한밤의 꿈처럼 사라진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윤동주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가 있다. 올 가을엔, 시 처럼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열심히 살았는지,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아름다운 삶을 살았는지,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싶다. 그리고 남은 인생을 의미 있게 채우기 위해 뭘 해야 할지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싶다. 내 마음의 가을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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