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외국인, 수놓은 보자기에 탄성 “정말 손으로 했나요?”

프랑스서 매년 9월 유럽 최대 섬유행사 열려
국제보자기포럼, 한국대표로 초청 받아
한국적 색감과 섬세한 자수 솜씨에 감탄
“현대미술 작품 보듯 추상적 아름다움 간직”

 

국제보자기포럼 EPM 참가 동행기

보자기는 물건을 싸서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네모지게 만든 작은 천을 의미한다.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물건을 싸서 두거나 싸서 옮기고 보관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작은 물건 하나라도 소중하게 다루고자 하는 절용의 미덕이 담겨있는 상징적 행위였다. 회초리를 싸 두던 회초리보, 갓난아이를 감쌌던 포대기, 전통혼례에 쓰이는 기러기를 싸는 기러기보까지, 일상적인 물건부터 시작해 가장 중요한 것을 보관할 때 쓰였던 보자기는 선물을 전하는 사람의 감각과 인격을 드러내는 도구였다.

이처럼 곳곳에서 흔하게 쓰였던 보자기는 물성 자체로는 대수롭지 않은 물건으로 취급받았지만, 포용성, 융통성, 가변성, 생태성 등 현대디자인이 지향해야 할 가치관을 두루 갖추고 있어 세계인이 주목하는 디자인으로 각광받고 있다.특히 받는이를 생각하며 한땀 한땀 정성을 들여 완성한 보자기는 어느 화려한 디자인보다도 특별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어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열린 유럽 최대의 섬유행사 EPM(European Patchwork Meeting)에서도 한국 보자기는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프랑스 알자스 세인트 마리오민(Marie Aux Mines) 마을 전체에서 매년 9월 개최되는 EPM은 전세계 50여 개국이 참가하는 섬유행사로, 전시, 워크숍, 강의, 패션쇼를 동반하는 디자이너 코너, 퀼트 제작에 관련된 각종 부자재 판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한국을 대표해 초청된 국제보자기포럼(대표 이정희)은 이곳에서 ‘Hands of Korea’ 전시를 개최,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50여명 작가의 작품을 소개했다.

전통 보자기 작품으로는 명인 나정희, 최인숙 작가, 국가 자수기능장(수자수 7811) 청헌 이정숙을 비롯해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작업하는 정종미(고려대학교 교수), 정경연(홍익대학교 교수), 차영순(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섬유예술가 김영순, 김홍주, 김영아, 장혜홍 작가 등이 참여했다.

프랑스 알자스주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차로 한 시간여 가량 떨어져 있는 세인트 마리오민은 아기자기한 프랑스 전통 가옥과 수려한 자연 경관이 어우러진 작은 시골 마을이다.

평소엔 인적이 드문 이곳은 매년 9월이면 EPM을 보기 위해 전세계에서 찾아온 방문객들로 도시가 북적인다.

도시는 ‘SAINTE-MARIE-AUX-MINES’, ‘SAINTE-CROIX-AUX-MINES’, ‘ROMBACH-LE-FRANC’, ‘LIEPVRE’ 등 네 개 구역으로 나뉘어 총 21개 공간에서 전시 및 워크숍을 진행한다.

성당, 극장, 관공서 등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고 있어 전시 뿐 아니라 마을의 다채로운 모습을 관광하며 즐길 수 있어 유익하다.

국제보자기포럼 전시는 ‘LIEPVRE’에서 열렸다. 아침부터 비가내려 이동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오전 10시, 전시가 시작되자 사람들로 전시장은 발디딜틈이 없었다.

전시장에는 한국을 비롯해 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가의 패치워크 작품으로 채워졌으며 특히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국가 자수기능장인 이정숙의 ‘장생도 자수 궁중보자기’와 김애경 작가의 ‘혼례용 보자기’는 전통 문양과 보자기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한국적인 색감과 섬세한 자수 솜씨에 “손으로 한 것이 맞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여러 조각의 헝겊을 대어서 만든 보자기인 조각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울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인숙 작가는 반구대암각화를 조각보로 표현한 ‘암각화 문양 조각보’를 선보였다.

삼베천으로 거친 돌 표면의 느낌을 살렸으며 암각화에 새겨진 동물들도 직접 조각보에 자수를 놓아 입체감을 더했다.

전시에서 가장 많은 질문을 받은 작품은 나정희 작가의 ‘낭자’다. 조각보의 형태는 유지하되 다양한 색의 천으로 작업한 나 작가의 작품은 화려한 색감으로 시선을 끌었다. 특히 절용의 미덕이 담긴 조각보는 옷을 만들고 남은 천을 엮었기에 조각의 모양이 제각각이다. 크게는 5cm에서 작게는 3mm에 불과한 조각들이 어우러진 조각보에 대해 관람객은 “현대미술 작품을 보는 것 같은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갖췄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이 밖에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마젠타 강(Magenta Kang) 작가는 조각보의 형태에 영국식 대성당을 디자인한 ‘Ely Cathedral’로 눈길을 사로잡았으며, 장혜홍 작가는 흰 실크 천에 붉은 모란꽃이 겹쳐진 화양연화 조각보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김경희 작가는 전통염색으로 완성한 작품을 통해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한국의 멋을 세계에 알렸다.

독일에서 패치워크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주디 리빙스턴(Judy Livingston) 씨는 “손으로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만큼 기술이 놀랍다. 정교한 작업이 주를 이루는 조각보를 통해 한국의 패치워크 수준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수 있는 전시였다”고 말했다.

패치워크 관련 전문가를 비롯해 일반 주민들까지 전 세계에서 모인 관람객들은 생소한 한국 보자기를 보고 ‘정성’이 담겨있다고 입을 모았다.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움 이상의 의미를 보자기를 통해 이해하게 된 것이다. 탁월한 솜씨는 시대, 국가를 초월해 인정받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가치를 보다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국제보자기포럼이 참여한 EPM 전시는 그런 점에서 유의미하다. /프랑스=민경화기자 mkh@



 

“우리 전통 문양·색상, 세계서도 통해 현대미술로 손색없어”

이정희 국제보자기포럼 대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일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보자기입니다.”

이정희 국제보자기포럼 대표는 2010년에 이어 2017년 다시 한번 EPM에 초청되며 한국 보자기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릴 수 있어 감회가 남다르다고 전했다.

국제보자기포럼은 한국 전통보자기의 예술성과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동시대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발전방향을 모색하고자 2012년 꾸려진 비영리 단체다.

대학에서 염색과 가구 디자인을, 대학원에서 크로셰를 공부한 이정희 대표는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미국 전시를 위해 한국적인 작품 주제를 고민하던 중 보자기를 만났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바느질을 바탕으로 다양한 변형이 가능한 보자기가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 대표는 “보자기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뛰어들어 공부하기 시작했다. 특히 세계인 누구나 할 수 있는 바느질과 천을 바탕으로 예술작품을 완성할 수 있기에 보자기가 가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RISD) 미술대학에서 보자기를 가르치고 있는 이정희 대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더해 새로운 보자기를 창조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그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는 “미국 학생들은 한국전통 천이나 문양, 색에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이를 변형해 현대미술로 손색이 없는 작품들을 완성했다. 이같은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국적이 것이 세계적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정보나 관심이 적었기에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끌기 어려웠다.

따라서 이정희 대표는 2012년 국제보자기 포럼을 만들고 한국 전통 보자기를 알리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2012년 파주에 이어 2014년 제주, 2016년 수원에서 국제보자기포럼을 개최, 전문가를 초청한 강연을 비롯해 10개국 이상의 작가들이 참여한 전시와 워크숍, 문화투어를 진행해왔습니다.”

국내에서도 주목하지 않는 보자기를 세계에 알리는 일은 녹록지만은 않았다. 3회에 걸친 국제보자기포럼과 EPM 전시에 참여하며 “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한다”고 밝힌 이정희 대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보자기의 아름다움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매진하겠다는 각오다./프랑스=민경화기자 mkh@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