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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구칼럼]앞서가는 사람들

 

세월이 지난 후 뒤돌아보면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다는 평을 듣는 이들이 있다. 부정적인 평도 있지만 대개 긍정적으로 하는 평이다. 특히 예술계와 과학계에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 가까이 대중음악에서는 아직도 활동중인 신중현, 서태지, 미술에서는 고인이 된 백남준, 문학에서는 얼마 전 타계한 마광수를 들 수 있다. 이들의 삶의 자리는 아웃사이더였지만 자부심과 자존감이 높았다. 주변과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특질을 지녔던 사람들이다. 이 같은 소수의 사람들이 시대를 이끌었고 어느 순간, 한 시대의 획을 그리기도 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콜럼버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뉴턴, 정약용, 에디슨, 아인슈타인, 피카소, 버지니아 울프, 나혜석, 비틀즈, 빌 게이츠 등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그 시대에서는 소수자였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들이 시대를 이끌었다는 말이 있다. 이들 덕분에 한 시대의 문화가 흥했고 세상이 변화 발전하였다. ‘이미지가 사상에 앞서 간다’라는 학설이 있다.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동 시대의 미술가의 작품(이미지)을 해석한 것이 그 시대의 철학(사상)이라는 것이다. 한류문화가 발생한 후 이를 해석하고 비평하는 문화이론이 그 시대의 문화담론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딕성당이 축조되었을 때 이를 해석한 것이 중세 스콜라 철학을 집대성했다고 하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이라는 말이 있다. 한 때 신림동 거리에 유럽 중세의 성곽을 모방한 조악한 웨딩홀이 한참 유행했는데, 그 때 사회는 공주병으로 몸살을 앓은 적이 있다. 공주병이 이런 형태의 웨딩홀을 만들었는지, 아니면 웨딩홀이 공주병을 유행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무엇이 선행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미지와 사상이 서로 공조하고 협업할 수 없을까 고민을 해보지만 예술가들의 전위(창조)적인 것과 무관하게 이론가들이 시대정신을 이끌 이론을 제시한다고 해도 예술가들은 그 이론을 따르지 않는 창조적 속성이 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시대정신을 앞서서 이끌어가는 정치지도자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민심을 자극했지 미래의 실현가능한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선동가였다. 예수도 선동가였다고 평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인류에 비전을 제시했고 그 비전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망측하게 보였기에 결국 십자가에서 죽었다.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는 말이 있지만 아주 미개한 나라를 제외하고는 현대의 정보사회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과거와는 완연하게 향상된 국민들의 수준을 감안하면 어느 선동가가 비전을 제시한다고 해도 그를 믿고 따를 국민들이 과거만큼 뭉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 중에서 후에 인정을 받지 못했던 사람은 한 우물을 파면서 전념해왔던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일정기간에만 타인을 의도적으로 의식하면서 허황된 퍼포먼스를 하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반시민들은 누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인지를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정작 앞서가는 사람들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전념해왔기 때문에 그 작업이 후에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일본은 종종 도시 뒷골목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다. 이름도 없이 장인정신으로 전념하다가 어느 순간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한류도 처음부터 기획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가수가 자신의 노래에 전념을 하다가 적절한 때에 인정을 받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본 기획사들이 자극적인 특이한 아이템을 들고 뛰어들 때는 대부분 실패하기 십상이었다. 천재는 타고난다고 하지만 에디슨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록 지금보기에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남의 시선과 실패를 두려워 말고 정진할 때 빛을 보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부는 청년창업 등 여러 가지를 기획하여 젊은이들에게 제공하고 있지만 정작 장인정신의 훈련을 받지 못한 청년들은 일확을 꿈꾸기도 한다. 눈앞의 성공을 포기하고 전념하는 청년이라면 후에 그 젊은이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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