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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개떡 같은 말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라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아직 하교 시간이 되려면 멀었는데 마트에서 어슬렁거리는 학생들이 눈에 띈다. 딱히 무엇을 사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자세히 살피기도 하며 몇 바퀴를 돈다. 한참 호기심 많을 때이니 그런가 하고 지나기도 하는데 다음에 보면 또 그 얼굴을 마주치게 된다. 속칭 땡땡이를 치고 있는 아이들이다.

집에서는 학교 가는 체하고 나와서 하루 종일 저렇게 빙빙 돌며 시간을 보내자면 하루가 얼마나 길고 지루할지 그리고 그 아이의 부모들은 알고나 있을지 걱정도 된다. 가정이나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지만 단순히 공부가 싫은 아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무조건 공부만 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방치되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옛날에도 선비라고 해서 모두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일도 하지 않고 글공부에도 관심이 없었던 사람도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주색잡기에 눈을 돌리고 허송세월을 하게 된다. 그러다 과거에 급제해서 벼슬길에 올라야 한다는 독촉에 응시를 하지만 번번이 낙방을 하고 가세는 걷잡을 수 없이 기울었다. 식구들 볼 면목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급한 것은 그 시절 법도가 삼대무작이면 양반이 아니라 평민으로 신분이 떨어져 벼슬길은 영영 막히고 만다. 어떻게 해서라도 급제를 해야 하는 처지였으나 글공부를 게을리 한 사람이 급제를 할 리 만무했다.

낙방거사로 고향에 돌아가는 일은 죽기보다 싫었다. 나선 걸음에 세상 구경이나 할 요량으로 묵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집을 찾아갔다.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시문으로 주유천하를 하는 문장가들이 모였으니 자고새면 밥을 먹을 때나 술을 마실 때에도 시를 주고받았다. 일상 대화가 시라고 하는 편이 옳았다. 낙방거사는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 그냥 한 쪽에서 조용히 잔이나 비우고 있는데 며칠이 지나도 글 한 줄 내놓지 못하는 선비를 가만 둘 리가 없었다.

낙방거사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 개중에는 소학이나 했느냐는 조롱이 나오기도 했다. 낙방거사의 속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별 수 없이 이 좋은 곳을 떠나 고향으로 갈 생각을 하니 자신의 처지가 딱하기도 하고 가족들 생각을 하니 처량하기도 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니 거미가 한 마리 기어가고 있었다. 저런 미물도 갈 곳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한탄이 나왔다.

“천장 거미…”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일이 점점 난처하게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당에는 모깃불이 모락모락 소담스럽게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화로겟불…”

좌중들은 무릎을 치며 탄복했다. 그리고 대 문장가를 몰라 뵈었다며 머리를 숙였다. 늘 시문을 지으며 벼슬을 마다하고 자유분방하게 살던 사람들은 낙방거사의 신세한탄을 자신들의 방법으로 해석을 하고 감동했던 것이다.

天張巨未 花老憩不 하늘은 넓고 끝을 찾을 길 없으며/ 꽃은 비록 늙어도 쉬어 가지 않는다.

저물녘에 헤어짐을 아쉬워했지만 낙방거사도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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