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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미 보병40사단 창설 100주년 기념식장을 다녀와서

 

“친애하는 장병 여러분! 사단장은 오늘 대민지원에 나섰다가 가평에서 진기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적의 폭격으로 지역학교가 무너지고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그 옆에 천막을 치고 오밀조밀 수업을 받고 있는 150명의 어린 학생을 보았습니다. 이 학생들은 묵직한 포성에도 아랑곳 않고 학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이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 속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있는 한 이 나라는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사단장은 이 아이들을 돕고 싶습니다. 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려고 하는데 장병 여러분도 함께 동참하지 않으시렵니까?”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미 보병 제40사단장 조셉 클리랜드 소장이 부대 장병에게 보낸 전언통신문의 일부이다. 이 통신문의 특징은 사단장이 부하 장병들에게 명령조로 말하지 않고 청유형으로 호소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호소에 힘입어 1만5천명의 사단 장병들은 1인당 2달러씩 3만1천달러를 모금하였다. 사단장은 이 기금으로 학교를 건립하고 사단 최초의 전사자인 카이저하사의 이름을 따 가이사 중학원으로 명명하였다. 나중에 가평고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평고등학교에 장학금을 보내오고 있다.

필자는 9월16일 캘리포니아주 로스 아라미토스 사령부에서 열린 미 보병 제40사단 창설 100주년 기념식에 다녀왔다. 40사단은 1917년 9월16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캠프 키어니에서 창설하였다. 사단창설 초기에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네바다, 유타주 등 서부지역 향토방위군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40사단이 본격적으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 때부터다. 40사단은 철의 삼각지 전투와 양구 단장의 능선과 샌드백 캐슬 전투에서 악전고투 끝에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40사단 최초의 전사자인 카이사 하사를 포함해 311명 전사, 1천180명이 부상당했다.

6·25전쟁 3년 동안 미국은 총 178만명 장병 파견, 3만7천명 전사, 9만2천명 부상, 3천700명 실종…. 특히 9만2천명의 부상자 중 상당수 중상자는 병상에서 이내 사망하고 실종자 3천700명도 어느 산악에서 백골이 되었으니 결국 5만명이 넘는 미군이 한반도에서 희생되었다.

6·25전쟁 미군의 전사자수는 15개 유엔참전국 총 전사자 수보다 여덟배보다 많다.

미군 전사자 5만명을 관에 넣어 대평원에 정렬해 놓는다면 얼마나 넓은 대지를 뒤덮을까 생각해본다. 상상할 수가 없다. 시인 모윤숙 여사가 국군을 예찬했듯 전사한 미군들도 그들의 고향에는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었고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들도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면 고국으로 돌아가 가까운 사람들과 마을 앞 시냇물에 발을 담그며 함께 살기를 열망하였다. 그러나 청춘의 꽃봉오리 채 피워보지 못하고 낯선땅 이름모를 계곡에서 장렬히 산화하고 말았다. 그리고 미군 전사자 대부분이 약관의 20세 젊은이들로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우리나라를 잘 알지도 못하였고 우리 국민 한 사람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국만리 먼길을 달려와 혹독한 추위와 적의 집요한 공격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워 우리의 영토와 자유를 지키고 학교까지 지어주었다. 이에 우리 국군 전사자와 함께 6·25전쟁 미군 전몰자 5만명의 넋을 위로하고자 한다.

‘살아남은 자는 늙을지라도 님들은 결코 늙지안으리. 세월이 지나도 쇠하지 아니하고 가는 세월 한탄치 않으리. 해 뜨는 아침이나 해 저문 밤에도 님들을 결코 잊지않으리’ <로렌스 빈욘의 시 ‘전몰자를 위하여’ 일부>

이날 행사장에서 만난 미 보병 40사단 생존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이제 평균나이 87세 고령으로 거동도 불편하고 건강도 좋지 않았다.

나는 참전용사 한분 한분의 손을 잡아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자 벽안의 노병들은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는 휠체어를 탄 어느 노병의 눈동자 속에서 설산 위에 떠오른 푸른 달과 차갑고 투명한 연인산의 겨울 하늘을 보았다. 이 노병이 과연 6·25때 공산군을 무찌르던 용맹무쌍한 전사였을까 의심이 들었다. 차라리 그는 구도의 길을 걷는 성자같았다. 또한 그는 김정은 북한 정권의 계속되는 핵과 미사일 책동을 비난하며 우리의 안보를 걱정해주는 너그럽고 인자한 큰 형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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