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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적폐청산이 적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16일 재판부에 대한 믿음을 거둔다면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고 하였다. 변호인단도 모두 사임하였다. 그런데 21년 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도 법정에서 같은 장면을 연출하였다. 12·12쿠데타 및 비자금 재판이 진행되던 1996년 7월 8일 변호인 8명은 “재판부가 유죄 예단을 갖고 있다”며 전원 사임했다. 당시 이양우 변호사는 전 전 대통령에게 “죄송합니다”라고 인사한 뒤 퇴정해 버렸다. 박 전 대통령 변호를 맡았던 유영하 변호사도 “아픔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피고인을 홀로 두고 떠난다”고 했다. 이러한 정치보복과 적폐청산 논쟁에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가세하였다. 지난 9월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안보가 엄중하고 민생 경제가 어려워 살기 힘든 시기에 전전 정부를 둘러싸고 적폐청산이라는 미명 하에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이러한 퇴행적 시도는 국익을 해칠 뿐 아니라 결국 성공하지도 못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진행 중인 국정감사에 대해서도 여야의 평가는 상반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적폐 청산과 민생과 안보를 지키는 국감을 했다”고 한 반면, 자유한국당은 “청와대와 여당이 정치보복 국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역대 ‘적폐청산’에서 청산되지 않아 쌓인 것이 적폐

현 정부 들어 북핵문제를 제외하면 최대의 화두는 적폐청산일 것이다. 문 대통령 공약집에서도 ‘이명박·박근혜 9년 집권 적폐청산’을 제1호 공약으로 앞세웠다. 그런데 현 정부에 의해 적폐의 대상으로 지목된 박 전 대통령이 적폐청산이라는 말을 먼저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초기엔 ‘비정상의 정상화’가 구호였으나 2015년 중반부터는 적폐청산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청산의 대상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 전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이 적폐로 규정한 정치권에 의하여 결국 자신이 탄핵을 당하였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 적폐인가?

“국내 모든 적폐를 과감하게 일소하고 앞으로 있을 총선거에서는 공정하고 자유스러운 국민의 의사표시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어…” 1960년 4·19로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후 장면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이 6·25 10주년 기념사에서 강조한 것도 적폐청산이었다. 5·16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도 당시 민주당 정권의 무능과 사회적 혼란을 적폐로 보았고, 전두환 정부는 1980년 ‘서울의 봄’을 무질서의 극치로 보았다. 노무현 정부 때도 과거사 청산이 큰 이슈였다. 기성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아무튼 모든 역대 정부는 표현은 다르지만 이전 정부를 청산해야 할 과거로 단정 짓고 자신의 시대를 각인시키고자 하였다.



인적청산을 넘은 시스템화로 현재진행형 적폐청산 필요

이전의 적폐가 다 청산되었다면 왜 반복되는 것일까? 적폐(積弊)는 사회에 오랫동안 쌓여온 잘못된 것들을 말한다. 이 때 적(積)은 쌓인다는 의미인데, 이것을 상대방 또는 원수를 의미하는 적(敵)으로 오해한 것이 아닐까? 역대정부의 적폐청산은 이전 정부의 인적청산에 그치고, 자신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부를 쌓거나 특권을 누렸던 것이다. 물론 이전 정부의 위법을 그대로 묻고 갈 수는 없다.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은 백지 한 장 차이다. 문제는 정치보복이든 적폐청산이든 매번 반복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적폐청산’이야말로 적폐다. 진정한 적폐청산은 더 이상 적폐가 이 땅에 나타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법과 제도를 바로잡고 스스로 지켜서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적폐청산에 나서고 있는 사법부와 검찰·경찰, 국정원과 감사원 등은 이전 정부에서도 있었고, 담당자들도 대부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그 당시에는 조용하다가 정부가 바뀐 다음에야 나설까?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정기관들은 후진국의 증표일 뿐이다. 폐단이 쌓이기 전에 제거하는 현재진행형 적폐청산이 답이다. 그래야 정부가 바뀌어도 더 이상 청산해야 할 적폐가 없게 된다. 그러려면 대통령의 의지와 사정기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공직자들 뿐 아니라 평상시 모든 국민의 관심과 감시만이 반복되는 적폐청산을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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