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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마음 덜기

 

하루는 서산대사가 어느 고을을 지나가다 부잣집 대문 앞에 이르렀다. 문간에서 염불을 하니 하인이 나와서 합장을 하고 재빠르게 주인의 명을 받아 안내를 했다. 하인의 기별을 받은 주인은 대뜸 이 스님이 서산대사임을 알아보고 버선발로 달려나와 큰 절을 올린 후 이내 식구들을 불러 인사를 올리게 하고 사랑채로 드시기를 권했다. 주인에게 한 달 정도 머물러 신세를 지겠노라고 하니 오히려 언제까지라도 머물기를 청하며 허리를 굽혔다.

주인은 하인들에게 시켜 온갖 산해진미에 어린 암소까지 잡도록 했다. 서산대사께서는 송아지 고기를 멀리하고 오직 집안을 두루 살피고 있었다. 서산대사가 집 주변이며 가족들과 하인에 이르기까지 면면을 살피니 아무리 보아도 누구 하나 복이 붙은 사람이라곤 없었다. 그 집에 복이라곤 한 주먹도 없었다. 그때 마루 밑에서 누런 개 한 마리가 기어 나와 서산대사 쪽으로 꼬리를 치면서 오고 있었다.

곁에서 대사를 따라 다니던 주인영감에게 저 개를 잡아달라고 했다. 송아지 고기도 거들떠보지 않으시는 대사께서 난데없이 개를 잡으라는 말씀에 황당하게 생각하면서도 감히 거역할 수는 없었다.

커다란 가마솥에 개를 잡아넣고 갖은 재료를 넣고 고았다. 온 집안에 보신탕 끓이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이 냄새가 마침 태교에 마음을 쓰는 별당아씨에게까지 유혹이 뻗쳤다. 평소에는 불심이 강하고 비위가 약한데다 입덧을 하느라 거의 때를 거르는 형편에 무슨 영문인지 계속해서 보신탕이 눈에 아른거리며 연신 침이 넘어가는 바람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몰래 하인들의 눈을 피해 부엌으로 잠입했다. 가마솥을 열어보니 뭔지는 몰라도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다름 아닌 암뽕이었다. 앞뒤 볼 것 없이 한달음에 암뽕을 건져다 먹어치웠다.

그런데 일이 어찌 되려고 그랬는지 서산대사께서 다른 고기는 다 필요 없고 바로 그 암뽕을 가져오라고 했다. 아무리 솥을 바닥까지 뒤져도 암뽕은 간곳이 없고 소복차림의 별당아씨가 석고대죄를 하며 자초지종을 아뢰고는 대신 자기를 죽여 달라고 애원하며 목을 놓아 울었다.

서산대사가 울음을 거두게 하고 주인을 타일렀다. 이 집에 사람이고 물건이고 복이 든 곳이라고는 없고 지금까지 아까 본 그 개의 복으로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개도 명을 다해 곧 죽을 운이라, 그렇게 되면 이집은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을 하게 되어 내가 그렇게 일을 꾸몄다. 이제 아이를 가진 며느리가 먹었으니 앞으로는 며느리의 복으로 살 것이며 아이도 태중에서 함께 먹었으니 그 복이 대를 이어 이 집을 떠나지 않게 되었으니 귀하게 여기고 잘 보살피라고 하였다.

사람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 운명론자도 있고 처음부터 운명같은 것이 있을 리가 만무하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표지향적인 사람도 있다. 삶에 정답이 없듯 어느 것이 옳다고 하기는 어렵다.

내 것이 되려면 어떻게 해서라도 될 것이고 내 것이 아닌 것은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도 내 차지가 되지 않는다. 비단 물질뿐이 아니라 인간관계도 그와 같다. 무엇에나 연연하지 않기로 하면 마음을 덜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가을은 벌써 단풍잎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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