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칼럼]아름다운 귀천(歸天)을 위하여
[정준성칼럼]아름다운 귀천(歸天)을 위하여
  • 경기신문
  • 승인 2017.10.3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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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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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필(主筆)

계절이 바뀌고 날씨마저 차가워져서 그런가. 최근 지인들의 부고(訃告)가 유난히 많았다. 지병으로 수년간 앓다가 가족 곁을 떠난 부인과의 슬픈 이별식, 연로하셨지만 약간의 잔병치레에도 정정하시던 부친의 갑작스런 죽음 등 내용도 각기 달랐다. 이런 사연들은 으레 문상을 하며 듣는다. 그리고 애도의 마음을 전하며 다른 한편으론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된다. 비슷한 가족들의 슬픔이 있었으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슬픈 감정은 잠시 그때뿐이다. 그리곤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다시 허둥지둥 눈앞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죽음은 이같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거리가 멀다. 누구도 죽음을 거부할 수 없고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피하고 싶고 두렵기만 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죽음은 어쩔 수 없지만 건강한 사람도 필연적으로 도달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이 같은 죽음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듯싶다. ‘두렵기 만한 존재, 영원히 피하고 싶은 대상’ 죽음을 잘 준비하고 즐기려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아서다. 후회 없이 생을 마무리하는 것도 잘사는 방법 중 하나라며 실천에 옮긴 일화도 여럿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세우기도 어렵지만 마음먹은 대로 순조롭게 이루지지도 않는다. 인생 속에는 예기치 못한 여러 일들이 발생해서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생명을 연장해야 하는 경우도 그중 하나에 속한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의학 발전과 환경 개선으로 인류의 꿈인 수명 연장이 개인에게는 축복이나 한편으로는 신의 저주이고 가족에게는 재앙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딜레마이지만 누구 하나 섣불리 잣대를 놓을 수 없다. 죽음을 이해하면 두려움도 줄어들고 생명의 본질이나 의미를 알게 돼 삶을 경외할 뿐만아니라 외로움으로 낙이 없는 고달픔과 자살을 피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유교의 영향으로 삶에 대해서는 긍정주의이지만 죽음과 사후를 논하는 것은 금기시한다. 삶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인식에 마지막까지 생명의 끈을 붙잡고 매달려 내려놓지 못한다. 생의 말년이 다가갈수록 목숨에 집착하여 의료비 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고통은 고통대로 겪으면서 가족들에게 부담을 더하고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위하여 중환자실에서 여러 생명의 줄을 달고 가족과 격리되어 고독하게 세상을 떠난다.

많은 사람들이 임종의 모습을 그려보기를 꺼려하고 사회적·법률적으로 치료내용과 중단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없다. 죽음도 삶과 같이 당사자가 조율하여야 할 것 같다. 생전에 심폐소생술이나 연명치료 여부와 서로가 꺼려하는 장례와 시신처리 등 사후 문제를 정리하여 사전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가족들에게 자주 확인시켜주면 본인도 편하고 가족간의 다툼도 없어지면서 아름다운 이별을 기대할 수 있다.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은 위기 순간을 넘기면 회복이 기대되는 환자들에게 당연히 필요하지만 말기 암 환자나 쇠진하여 돌아올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에게는 살리기 보다는 가야할 길을 더욱 힘들고 멀게 할 뿐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런데도 가족들은 살아 있는 한 끝까지 도리를 다 해야 한다고 밀고 간다. 기사회생을 믿고 끝까지 다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는 가족도 있다. 이럴 경우 말기 암 환자에게는 항암제의 고통 속에서 생명과는 무관한 약물 부작용 치료에 매달리면서 삶의 질은 더욱 악화된다. 본인의 삶도 죽음도 확실한 인생관을 가지고 주위를 정리하여야 편하다. 파스칼은 말했다. “내세를 믿으라. 죽어서 있으면 다행이고 없어도 아쉬울 것 없지 않은가.” 라고. 소크라테스는 “내세가 있으면 먼저 간 친구를 만나 좋고, 없으면 현재 고통을 끝내서 좋다”면서 삶과 죽음을 초월한 의미 있는 말을 했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죽음도 삶의 연장이라는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죽음은 별난 일도 아니고, 나 혼자 당하는 일도 아니잖아요. 죽음으로 가는 과정은 괴롭지만 조금은 더 고요하고 깊고 그윽했으면 좋겠습니다. 담담하게 살다가 회복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으면 연명치료가 아니라 통증완화 치료를 바라는 사전의향서를 의사와 가족들에게 담담하게 작성해주면 어떨까요.” 어느 노 철학자의 말처럼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할 준비를 해둔다면 귀천(歸天)하더라도 아름다운 향기가 남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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