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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한밤의 데이트

 

이 늦은 밤에도 누군가는 잠을 자지 않나 보다. 나처럼 깨어있어 연거푸 소식을 보내오다니. 일박이일 네 번 째 김장을 했다. 밤새 완성한 자작시, 증축한 집을 자랑하고, 숨 막히게 고되다는 그녀의 하소연에 이어 막장봉 산행에서는 힘이 펄펄 넘치다가도 마침내 토론토 시청 앞 광장에서 스카프를 나부끼기까지의 소식들. 끝없는 그들의 데이트 제의에 마침내 굴복, 환하게 웃는 이모티콘 한 장에 몇 줄 댓글을 띄우고서야 잠을 청하는 것이 요즘 내 달달한 데이트의 꼴이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내 데이트에는 장점이 참 많다. 일대다수의 만남에도 남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나이의 제한도 없고 그 상대의 성별에도 개의치 않는 인터넷만 열린다면 그야말로 자유분방한 그들과의 만남. 더하여 데이트 비용조차 준비할 필요가 없으니 이보다 더 경제적 일수는 없다. 온전히 나를 다 드러낼 필요도 없는, 공감코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남이 가능한, 바쁘고 정신없는 나에게 어쩌면 가장 적절한 제3의 소통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갖가지 장점에도 가끔씩 불안해지는 건 마치 내가 새로운 형태의 현대판 히키코모리가 될 것 같다는 걱정에 이르러서다.

사회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들을 흔히 히키코모리라고 한다. 급속한 사회변화, 학력지상주의에 따른 압박감, 청년실업자의 심리적 부담감, 실직, 사교성 없는 내성적인 성격 등등 히키코모리가 될 수밖에 없는 요인들은 우리 주위 도처에 널려있다. 그들 또한 처음부터 히키코모리가 아니었던 것처럼 누구나 은둔형 외톨이가 될 가능성을 품고 있는 복잡한 경쟁이 넘쳐나는 요즘 세상. 어쩌면 모두가 각자 선택한 새로운 형태의 ‘선택적 히키코모리’로 변신중인지도 모른다. 그 또한 세상이라는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테니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 ‘이 사람 얼굴 좀 잘 보세요. 아주 나쁜 놈입니다’로 시작한 이 글에는 실명까지 거론하며 한 사람의 행위를 낱낱이 나열,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었다. 수많은 댓글에는 같이 욕을 해주는 사람들, 힘내라 용기를 주는 사람들, 말없이 이모티콘을 올려주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사실 나는 그들을 다 모르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지만 결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평가에 동조하는 것도 문제지만 내가 띄우는 댓글 하나에 반응하고 상처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SNS에 글을 올리는 행위나 댓글을 다는 행위는 지극히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엔 당사자의 사과문으로 끝난 해프닝이었지만 오래도록 아쉬움으로 남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깜박깜박 불이 들어오고 오늘도 연거푸 소식이 뜬다. 한껏 멋을 부린 누군가의 셀카 사진. 다정다감한 인사말.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 ‘오늘 스테이크 먹었다’로 시작하는 그 여자의 먹방 사진. 기모노 입고 큐슈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며 친구들과 찍었다는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들의 추억이야기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마치 오랜 친구처럼 전해 오는 그들 이야기, 단순한 공감과 순수한 울컥거림이 직접 만남에서 오는 부담감보다 오히려 편안할 때가 있어 참 좋다. 오늘도 나는 하루일과를 모두 끝낸 야심한 밤, 습관처럼 한밤의 데이트를 즐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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