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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어머니의 눈물

 

갈바람 한 줌에 바스라질 것 같은 그녀가 꺼이꺼이 운다. 울음은 가랑잎처럼 가녀리고 몸통을 꺾는 거목처럼 묵직했다. 구십 노파가 예순 후반의 자식 영정 앞에서 목 놓아 운다. 내 뒤를 따를 것이지 어쩌자고 어미 앞에서 저승길을 재촉하느냐고, 어디서 배운 고약한 버릇이냐며 운다.

호박물이 먹고 싶다 해서 실한 놈 구해다 놨는데, 돼지감자가 몸에 좋다길래 돼지감자 캐놨는데, 며칠 전 병원에서 만났을 때 얼굴을 만져보라더니, 어미 손을 하염없이 쓰다듬더니 그게 마지막 인사였구나, 아들아 내 아들아.

백발의 노파는 너무나 아득한 이름, 아들을 부르며 오열한다. 넘어진 얼굴의 상처는 검버섯처럼 얼룩졌고 넘어질 때 다친 갈비뼈를 어쩌지 못해 온 몸으로 슬픔을 토해낸다. 기력 쇠한다고 밥 한술 권하는 조카에게 자식 앞세운 죄인이 무슨 낯으로 밥을 목으로 넘기냐며 호통도 아닌 하소연도 아닌 슬픔을 내지른다.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부고알림이 잦다. 문상을 가보면 상주들의 곡소리를 듣기 쉽지 않다. 고인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부모상을 당한 상주의 표정은 그리 무겁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죽음도 하나의 과정이니 엄숙하고 정중하게 모시자는 의미도 있고 사실 만큼 사셨으니 편안한 곳에서 영면하시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지인의 부친상에서는 가족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 음악가 가족답게 고인이 평소 즐겨부르던 노래를 부르며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부친의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 이색적이기도 했지만 아름답고 경건했다. 슬픔만이 고인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고 고인이 편히 갈 수 있도록 기쁘게 보내드리는 것도 방법이라는 것을 배웠다.

자식이 부모를 보내는 마음은 숙연하고 엄숙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보내는 것은 살면서 가장 큰 슬픔이고 고통일 것이다. 고통을 견디지 못해 몸부림치고 손톱이 다 닳도록 벽을 긁으며 아픔을 토해낸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식을 따라가고 싶다는 어머니의 사랑은 짝사랑이고 해바라기 사랑이다.

자식을 키워 본 사람은 마찬가지겠지만 어릴 때는 부모를 전부로 알고 믿고 의지하지만 성년이 되고 가정을 이루다보면 부모의 자리는 저만치 구석이다. 이런저런 이유와 구실로 코너로 밀리지만 부모의 사랑은 그럴수록 더 애잔하기만 하다.

밥은 제대로 먹고 사는지 추운데 방은 따뜻한지 제 새끼들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지 늘 자식 걱정에 편할 날이 없다. 기뻐도 울고 슬퍼도 흘리는 것이 어머니의 눈물이다. 언니 시집보내고 부뚜막에 앉아서 우는 어머니를 본 적이 있다. 혼수가 부족해서 혹여 시집살이 하는 것은 아닌지 요리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는데 제대로 살림이나 꾸려갈지 이런 저런 걱정과 서운함에 어머니는 훌쩍이며 행주치마로 눈물을 훔쳐냈다.

이렇게 애면글면 키우는 것이 자식이다.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것이 자식이다. 부모가 베푸는 것은 당연하고 자식이 부모를 위해 뭔가 하면 생색을 내고 싶어하고 대가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요즘 흐름이 그렇다.

가정 형편과 맞벌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노인들이 요양시설에서 죽음을 맞는다.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고 자식을 그리워하면서 생을 마감한다. 낮은 출산율과 급격한 고령화로 인한 사회문제이기도 하지만 이 땅의 어머니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 어머니의 평생 업은 자식을 향한 그리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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