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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구칼럼]예쁨과 감동

 

지난달 각기 다른 일간신문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보았다.

하나는 ‘배달의 민족’ 김봉진(40) 대표가 사재 1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고 편법승계나 가족경영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어릴 적 가난을 딛고 어렵게 전문대를 나와 창업에 성공한 불과 40세의 젊은이다. 제주도에 가서 두 달 동안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한다. 큰 감동이다. 모든 기업인들이 이 소식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가 되면 눈치 보며 내 놓는 기업의 돈들이 고맙지만, 아무리 자신의 수고로 이룩한 자신의 재산일지라도 부자들의 사회에 대한 공공성과 도덕성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또 다른 소식은 다양한 직업을 갖고 인류학공부 중인 여행가며 작가인 공원국씨가 키르기스스탄의 양치는 마을 사리마골에 가서 그들의 양에 대한 태도를 전해 준 글이다. ‘사람은 양을 닮고 양은 별을 닮는다’는 이야기이다. 양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그 지역사람들이 양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지어낸 말일 수도 있지만 은하수의 무수한 별들이 모두 하늘의 양이라는 것이다. 양들이 죽어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된 것이다. 정말 예쁜 이야기이다. 허클베리 핀이 뗏목에 누워 미시시피 강을 내려오면서 흑인 노예 짐에게 하늘의 저 무수한 별들이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를 묻는다. 지식이 없는 짐은 큰 별이 낳은 것이라고 한다. 허클베리는 더 어릴 적 동네에서 개구리가 수많은 알을 낳았던 것을 기억하며 짐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이 장면이 머리에 그려지는 광경은 예술이고 이 내용을 믿는 것은 종교이다.

김봉진씨의 결단과 사리마골마을의 양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 예술과 종교가 함께 어우러져 우리에게 풍광의 예쁨과 마음의 감동을 준다. 우리는 작든 크든 하루에 예쁨과 감동을 얼마나 만나게 되고 나 자신은 이웃에게 얼마나 예쁨과 감동을 전하는지 생각해 보자. 오히려 짜증과 비난으로 얼룩져 있지는 않은지도. 예쁨과 감동의 무게와 양이 문제가 아니라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매일 이들이 쌓이면 나 자신은 물론 사회가 예뻐지고 덩달아 나라가 국민에게 감동을 주게 된다.

유토피아와 천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나라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업인과 정치인들의 책무이다. 국회 청문회는 아재개그 같아서 보는 이들에게 감동보다는 비웃음을 주고 기업의 부도덕성이 국민들에게 비난을 주는 나라에서 예쁨과 감동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쉽지 않은 만큼 국민들은 아주 작은 것에도 큰 기쁨과 감동을 받게 된다. 부익부 빈익빈을 당연시 여기는 나라, 계급과 계층이 대물림되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국민은 이를 탈출하기 위해 입시에 시달리고 고시와 취업준비에 시달린다. 출산은커녕 결혼조차 기피하며 ‘욜로족’이 되기를 선택한다. 복권과 창업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다가 천만분의 일 확률로 성공을 하게 되면 평소 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를 부러워 질투하고 성공한 사람은 그 천운과 수고를 나눌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분단되어 전쟁의 위협 속에 있다. 긴박한 남북관계를 그동안의 경험으로 안이하게 대응하면서 오히려 전쟁은 불가능하다는 자기 최면에 빠지기도 한다. 예쁨과 감동보다는 비난과 질시가 더 풍성한 국가도 경제성장은 할지 모르지만 그 나라 대다수 국민들의 품성은 경제성장보다 더 큰 비율로 피폐해질 가능성이 높다.

과거 농경사회에서의 나눔은 미덕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데 기본 생활지침이었다. 초대 그리스도교회도 나눔이 사랑을 실천하는 제일의 덕목이었고 현대교회의 정신도 그러하다. 지난달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국내의 교회들이 회개를 했다고 하지만 그 변화는 지켜볼 일이다. 대기업도 세습을 하지 않는데 이미 대형교회 하나는 종교개혁 500주년 직후에 목사직을 아들에게 세습했다. 잠시만 버티면 영광은 영원할 것이라는 적 그리스도적 믿음이 그 목회자와 이를 지지하는 신앙인들의 마음 한가운데 이기심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정치와 종교에서 예쁨과 감동을 찾아 본적이 언제인지 모른다. 소설 속에서나 찾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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