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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고 푸른 자연속에 마음껏 배우는 아이들

 

NGO활동하던 선생들 모여 협동조합 설립
광명서 2014년 ‘이야기숲’ 유치원 첫발

원생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체험활동 펼쳐
자연관찰·텃밭가꾸기·산책 등으로 운영
오후엔 독서·시낭송·차마시기로 즐거운 시간

“숲유치원 다니면서 아이들 성격도 쾌활해져”


광명 숲유치원 ‘이야기숲’ 탐방

세상은 험난하다. 부모들은 자녀가 어릴 때부터 이런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요즘 적잖은 부모들은 흙조차 지저분하다고 못 만지게 한다. 이런 아이들이 자라면 어떤 어른이 될까?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우리가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울 정도로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만큼 만 5~6세 때 익히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취학 전 어린 자녀들을 어떻게 키우면 될까? 그 해답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하얀 눈이 내리던 지난 24일 광명시 노온사동에 위치한 숲유치원 ‘이야기숲’을 찾았다.

 



아이들이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 숲유치원 ‘이야기숲’

광명시의 유일한 숲유치원인 ‘이야기숲’은 구름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원생은 23명. 올해 초 25명이 입학했으나 안양에서 등·하원하던 형제 2명이 멀리 이사하면서 23명으로 줄었다. 이곳 정원은 개원 첫해인 지난 2014년부터 4년째 25명이다.

지난 24일 숲유치원에 도착하니 하루 전날 내린 눈으로 나무 잎사귀들은 하얗게 채색돼 있어 보기가 좋았지만 산길은 진흙탕으로 변해서 걷기 불편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숲에서 신나게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낯선 이의 방문에 송아지 눈망울처럼 눈을 꿈뻑이며 손에 들고 있던 눈덩이를 던질까 말까 고민하던 아이들은 “던져봐. 괜찮아”라는 말에 일제히 눈뭉치를 던지고는 뭐가 좋은지 꺄르르 웃었다.

이날 눈싸움의 법칙은 ‘머리를 향해 던지지 말 것’.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장갑 낀 고사리 손으로 눈뭉치를 만들고 던지기를 반복하며 추운 줄도 모른 채 뛰어다녔다. 그런 탓에 아이들의 옷은 이미 군데군데 흙으로 더럽혀져 있었고 코에는 콧물이 나왔다가 들어갔다를 반복했지만 교사들은 누구하나 콧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아이들 역시 응석부리지 않았다. “도시 아이들이 맞나?” 할 정도로 낯선 풍경이었다.

정해진 길은 없다. 아이들은 숲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대신 교사들의 시야에 항상 아이들이 있다. 이야기숲을 운영하고 있는 ‘두꺼비산들학교협동조합’ 장귀익 이사장(애칭 여울각시)은 “아이들이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 유치원”이라며 원생들을 향한 대견함이 그의 표정에서 오롯이 드러났다. 이곳에서 원생들은 교사를 애칭으로 부른다.

숲유치원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운영된다. 오전 프로그램은 ▲자연관찰(월) ▲장구치기 수업(화) ▲텃밭 가꾸기(수) ▲밧줄놀이(목) ▲긴 산책(금) 등이며 점심식사 후 오후에는 자유놀이시간이 잠깐 주어지고 ‘책읽기’, ‘시(詩) 낭송’, ‘하루 돌아보기’, ‘차(茶) 마시기’가 매일 진행된다. 책은 교사가 읽고 아이들은 듣기만 한다. 이곳 아이들은 책을 보며 읽지 않는다. 그저 듣기만 한다. 시낭송은 교사가 읽고 아이들이 따라하는 식이다. 또 하루 돌아보기는 교사와 아이들이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또한 차 종류는 봄(생강나무꽃차), 여름(오미자차), 가을(국화차), 겨울(유자차 또는 보이차) 계절별로 각양각색이다.

 




여성 5인방이 의기투합한 두꺼비산들학교협동조합

“두꺼비산들학교(NGO)를 운영하면서 ‘실내교육을 위주로 받은 아이들은 심신이 허약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서 숲유치원을 만들게 됐습니다”

3년 8개월째 숲유치원 ‘이야기숲’을 이끌고 있는 여울각시는 한창 뛰놀아야 하는 만 6세 미만의 아이들이 실내에 갇혀 글자공부, 숫자공부 위주로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런 운영철학으로 23명의 원생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숲이 우거진 자연 속에서 자연과 벗삼아 서로 부대끼며 생활하고 있다.

여울각시를 비롯한 총 5인의 여성들이 두꺼비산들학교협동조합을 창립한 것은 지난 2013년 9월. 그 뿌리는 광명경실련 산하에서 지난 2000년 3월 결성된 환경모임인 ‘구름산두꺼비’다. 구름산두꺼비는 단순히 광명경실련 회원 6~7명으로 구성된 스터디그룹. 그러던 중 여울각시 등 10명이 2007년 9월 광명경실련에서 떨어져나와 독립하면서 비영리민간단체(NGO) ‘두꺼비산들학교’를 만들게 된다.

이들의 목적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생태교육을 하는 것. 성인을 대상으로는 월 1회 2시간씩 1년짜리 ‘생태안내자교육’을, 초등학생과 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는 ‘생태탐사’ 교육을 펼쳤다. 그렇게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여울각시를 비롯한 NGO 두꺼비산들학교 회원이던 조은주(민들레)·김선미(하늘지기)·최로사(산들바람)·김옥현(때죽나무) 선생 등 5인은 만 4~6세 아동들의 심신이 과거에 비해 나약해졌다는 것을 절감하고 ‘숲유치원’ 을 지난 2014년 3월 개원했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마력을 가진 숲유치원

만 6세인 여정(여·광명 철산)이는 3년째 숲유치원을 다니고 있다. 흙놀이, 곤충잡기, 개구리잡기, 썰매타기 등등 아파트에서는 할 수 없는 이 모든 것을 친구들과 매일 할 수 있어서 즐겁다고 한다. 하지만 내년이면 이곳을 졸업해야 한다. 외동인 여정이는 초등학교에 가는 대신 유치원에 계속해서 있고 싶다고 이내 얼굴빛이 흐려졌다. 동갑내기 찬빈(6·부천 옥길동)이는 부모의 결정으로 유치원에 이어 내년에 초등학교도 대안학교로 간다. 여울각시에게 잡아온 방아개비를 보여주며 해맑게 웃는 찬빈이의 모습에서 대안학교 ‘이야기숲’에서의 행복함과 즐거움이 물씬 풍겨졌다.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 사는 찬호(6) 역시 내년이면 졸업이다. 이곳은 개원 당시 만 3세부터 원생을 받았으나, 이듬해인 2015년부터는 만 4~6세를 입학시켰다. 찬호는 만 3~6세 4년을 다녔다. 찬호의 친형 윤호(8)도 이곳을 2년 다니고 지난 2015년 겨울에 졸업했고, 찬호 동생 건호(4)도 내년에 입학 예정이다. 찬호네 3형제가 같은 유치원 선후배가 되는 셈이다.

이곳에는 찬호처럼 형제, 자매, 남매가 함께 다니거나 여정이처럼 오랜기간 다니는 아이들이 대다수다. 그렇다고 이들 부모가 아이 맡길 곳이 없어서 이곳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오후 2시 30분이 하원시간이어서 맞벌이 부부는 이곳에 아이를 맡기기 힘들다. 또한 대안학교인 탓에 법적 테두리에 있는 여타 유치원보다 부모에게 주는 정부보조금이 적다. 그런데도 이곳 원생 부모들은 숲유치원을 고집한다. 그만큼 이곳의 ‘교육시스템’이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한 학부모는 “아이가 숲유치원을 다니면서 성격도 쾌활해지고 표정도 많이 밝아져서 좋다. 그리고 남들은 ‘글자와 숫자를 늦게 배우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는데 초등학교에 가서 배워도 충분하다”며 “취학 전에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연과 벗삼아 노는 것이 중요하다. ‘바람은 막아주고 햇볕은 나눠주는 것이 바로 숲의 정신’이라고 하늘지기가 말씀해줬다. 그만큼 아이들이 이곳에서 오늘날 점점 사라지고 있는 공동체정신을 배우고 있다”고 흡족해했다.

/광명=유성열기자 mul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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