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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렘브란트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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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07일  19:56:54   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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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스트

거리들이 불빛들로 채워지는 12월이다. 기쁨과 환희를 한껏 머금고 있는 불빛들도 있지만, 성스럽고 신비로움을 차분하게 전하는 빛도 있다. 바로 렘브란트의 초상화처럼 말이다.

렘브란트 반 레인의 작품에는 찬연한 빛이 담겨 있어 사람들은 그를 ‘빛의 화가’라고 일컫는다. 특히 렘브란트의 초상화에 어려 있는 이 영롱한 빛은 너무나 신비로워서 마치 인물의 내면에서 저절로 새어 나오는 빛인 것 마냥 느껴진다. 만약 렘브란트가 이처럼 인물에 대한 탁월한 묘사가 가능하지 않았던 화가였더라면 결코 연출되지 못했을 효과였겠지만, 인물의 작은 주름, 수염, 눈망울, 눈썹 그 어떤 것도 놓치는 법이 없었던 렘브란트였기에 그의 인물은 신비로운 빛에 둘러싸여 늘 그 진가를 발하곤 한다. 당시 다른 지역 초상화에서는 인물이 입고 있는 의상이나 배경으로서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렘브란트의 초상에서는 배경이나 의상이 인물을 압도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는 본질을 놓치지 않았던 화가였다.

아주 오래 전 내셔널갤러리에 걸린 렘브란트의 초상화들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결코 훈남, 미녀라고 할 수 없는, 어떻게 보면 주변에 보았음직한 평범한 인물들에게서 고유한 내면의 힘과 특징이 드러나면서 세상 그 어떤 인물보다도 귀중하게 드러났기에, 그의 초상화는 내면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고 생각했었다. 으리으리한 복장을 갖추고 위용을 뽐내는 인물이 등장하는 초상화들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 진실이 그의 작품에는 담겨 있었다. 당시에는 렘브란트라는 대가에 대해서 그다지 많이 알고 있지 못했던 필자였기에, 그는 어쩌면 잔잔한 화가로서의 행로를 걸으며 주변을 늘 자상하게 대했던 푸근한 아저씨가 아니었을까 상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만만치 않은 인생 역경을 겪었던 화가였다. 말년에 이르면서 그는 온갖 불명예와 수치, 가난을 견디며 작품을 해야 했다. 한때 그에게도 좋은 시절은 있었다. 귀족 가문 출신의 부유했던 첫 부인을 만나 결혼을 했고, 젊어서부터 화가로서의 명성도 쌓았다. 암스테르담에서 사업에 크게 투자를 해서 돈을 벌기도 한다. 하지만 곧 그는 파산했고 빚더미에 시달렸다. 세 번째 부인과는 간통 혐의에 휘말리며 종교재판장에 서기도 해야 했다.

무엇보다 작가로서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작품에 내려지는 혹평이었을 것이다. 필치가 지나치게 거칠고 사실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으며, 대놓고 렘브란트를 한물 간 인물로 취급했다. 점차 후원자들의 주문이 줄었고, 작품을 마치고도 대가를 받지 못하는 일도 속속 벌어졌다. 주문의 의도에 맞지 않는다며 작품이 반환되기도 했으며, 작품이 걸릴 새로운 장소를 찾기 작품을 직접 잘라버리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다. 시청의 주문으로 시작된 대작 ‘클라우디우스 키빌리스’는 렘브란트가 오랜 오명을 벗고 재기에 성공하길 꿈꾸며 최선을 다했던 작품이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심하게 훼손되고 잘려진 상태로서만 감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점점 더 거칠고 자유로운 기법을 구사하게 된다. 한때는 주문자의 의도를 영리하게 파악하여 작품에 담아냈던 그였지만 노년의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작업을 했다. 고집스럽고 완강한 성격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화가로서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을 것이다. 소설가 김연수가 ‘소설가의 일’이라는 책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소설가로서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한번 앞으로는 소설가로서 살 수밖에 없는 중요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고, 그래서 다리를 건너 강을 지나고 나면 자신이 지나온 다리를 다시는 건널 수 없도록 불태워 버린다고 말이다. 비단 소설가뿐만 아니라 여러 장르에서 할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술가의 인생에서 다리를 한 번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개의 다리가 나타난다. 삶은 점점 더 고립되어 버리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앞도 뒤도 옆도 보이지 않는 동굴 속에서 대가는 탄생된다.

내셔널갤러리에 전시된 렘브란트의 1669년 작 ‘자화상’은 그가 죽던 해에 그려진 작품이다. 여전히 내 눈에는 푸근한 아저씨로서의 느낌이 강하다. 방종과 어리석음으로 얼룩진 세월의 흔적과 함께 화가의 진심이 빛을 발하고 있다. 탁월함과 빼어남만으로 완성된 대가의 모습이 아니다. 세월과 함께 완성된 대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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