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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전우(戰友)들과의 만남이 설레는 이유

 

1년이면 한두 차례 군에서 같이 근무했던 전우들을 만난다. 이번 주말 그들과의 송년회가 기다려진다. 1982년 제대했으니 37년째 이어져오는 끈질긴 만남이다. 남자들 셋만 모이면 군대 이야기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지만 남자들도 만만찮다. 혹자들은 제대하고 나면 부대 쪽을 향해 XX도 안 눈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래도 군대 얘기가 나오면 신이 난다. 자신들이 가장 고생한 것인 양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당시 동료 전우들은 물론 소대장 선임하사(행정보급관)에 국방장관을 지내신 중대장까지 수십 명이 모인다. 50대 후반에서 60이 훌쩍 넘은 나이들이다.

1979년 군에 입대했을 때는 전쟁만 치르지 않았지 정말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탄에 서거했고, 전두환 장군의 12.12 군사쿠데타에, 광주민중항쟁 등 굵직한 사건들로 점철됐던 시절이었다. 실전상황인 준전시상태의 비상이 발령됐으니 그 시절 군에서 지낸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분주했다. 지금은 어디에다 버렸는지 모를 ‘국난극복기장’이라는 마치 훈장처럼 생긴 흉장을 달고 휴가를 나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북을 향해야 할 총부리가 동료들을 향하기도 했고, 동족을 향하기도 해 죄스럽기도 하다. 반란군의 편인지, 누구의 편인지도 모르고 그저 명령에 복종해 시키는 대로만 했던 것이 죄라면 죄고, 공이라면 공이다. 역사적 아픔의 피해자다.

시대적인 상황도 상황이지만 구타와 폭력 등 내무생활의 부조리가 횡행하던 때여서 어쩌면 그것이 더 견디기가 어려웠다. 세상을 살다보면 너무 힘들 때가 많이 있기 마련이다. 마음에 상처를 입었거나, 또는 힘들고 어려웠던 경험과 기억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래서 혼자만의 고독을 찾기도 한다. 개인 차가 있겠지만 사람은 쓰라림과 고통, 힘듦과 갈등, 피 흘림의 기억이 있었던 장소를 찾아간다. 행복했던 경험들을 떠올리며 자기회복 기능을 발휘하기보다 오히려 힘들었던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나를 방어하려 한다. 전우들 중 몇몇은 위문품을 들고 부대를 몇 차례 찾아가기도 했다. 나 역시 부대 앞을 지나다가 그냥 위병소에 들러 빵봉지를 한아름 놓고 온 기억도 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이를 ‘주둔군이론’으로 설명한다. 군인들이 전투하면서 고지를 하나씩 점령해 나갈 때마다 그 점령고지에 얼마씩 주둔군을 배치한다. 그런데 군인들이 전투하다가 패하여 후퇴하거나 힘들어 휴식을 취해야 할 때는 가장 치열한 전투를 했던 그 고지를 찾게 된다. 가장 치열한 전투 후 점령한 고지에 주둔군을 가장 많이 남겨두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야 안전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병력을 빨리 보강하여 다시 전투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유난히 힘들었던 그 지점에는 자신의 심리적 주둔군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심리적 `주둔군 이론'이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자리하게 되는 이유다.

군대에서 함께 고생했던 전우들과의 만남도 생각해보면 이 ‘주둔군 이론’ 때문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본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반 사이 나라가 극도로 혼란한 시기에 우리들은 북한이 쳐들어올까를 걱장하며 군화끈을 고쳐맸다. 교육훈련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의 부대여서 평상 시에는 혹독한 훈련을 거듭했다. 자다말고 어느 새벽에 집합을 시킬지 모를 고참들의 눈치를 보며 숨을 죽였다. 그러나 이 또한 다 지나갔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또 그렇게 흐른 것이다. 이번 주말 이들을 만나면 가슴 쓰린 추억들이 즐거움으로 변할 것이다. 20대 청년으로 잠시 돌아가 추억을 노래하며 왁자지껄 잔을 부딪칠 것이다.

한해가 또 저문다. 어느 곳 하나 편한 구석이 없다. 그러나 각자가 갖고 있는 ‘심리적 주둔군’을 찾아 볼 일이다. 인간은 어머니의 뱃속을 그리워하는 모태귀소본능(母胎歸所本能)을, 여우같은 동물은 죽을 때만이라도 고향땅으로 머리를 둔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을 갖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삶 중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안했던 장소를 찾고, 떠올리며 위로받는 연말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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