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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희망을 말하다

 

흘러드는 햇살이 좋다. 창가에 앉아 밖의 풍경을 본다. 입주를 막 시작한 새 아파트는 드나드는 차량들로 분주하고 얼음 깔린 저수지 위로 청둥오리 한가롭다. 새 둥지를 트는 것은 설렘이고 기쁨이며 희망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수원이던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과수를 잘라내고 터파기 작업을 할 때는 심란하고 속상했다. 내 집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나는 늘 별장에 사는 듯 즐겁고 행복했다. 봄이면 하얗게 피는 배꽃이 좋았다. 달밤에 유리문 너머로 바라보면 일렁이는 흰 물결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낮게 깔린 물안개며 동네 개 짖는 소리, 과수원 빨간 집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도 좋았다. 그림 같은 서정을 끼고 살았는데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밤낮없이 쿵쾅대고 흙먼지가 날려 문을 열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내 정원이 없어진 것에 대한 서운함이 컸다. 이십여 년을 살았으니 이제는 이사를 가야하는 고민도 생겼었다.

2년여 작업 끝에 아파트는 완성됐고 내 집에서 보는 풍광들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작은 언덕에 가려 보이지 않던 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오고 베란다 앞으로는 잘 가꾼 커다란 정원이 생겼으니 이 또한 즐거움이다. 공사시작 후 걱정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건설현장에서 크고 작은 사고 소식이 들려 안타깝기도 했고 아파트가 어떻게 지어지는지 땅파기 공사부터 완공까지 볼 수 있는 귀한 경험이기도 했다. 물론 수박겉핥기 식으로 밖에서 들여다보는 것은 큰 공사 중에 미미한 부분이겠지만 그래도 생소한 일이었고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는 일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겨운 일인지도 보았다.

물론 먹고 사는 일이 만만한 것은 어떤 것도 없겠지만 건설현장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삼십층 높은 크레인에 앉아 하루 종일 작업하는 크레인 기사들이며 안전모를 쓰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작업자들, 일이월 한파도 칠팔월 땡볕도 아랑곳없이 공사일정을 맞추기 위해 쉼 없이 일했다.

요즘 크레인 사고로 인명피해가 속출하여 안타깝다. 누군가의 실수 또는 안전 불감증 또는 기계결함 등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귀중한 생명을 잃었다는 것이다. 안전수칙을 지키고 철저한 점검을 통해 안전사고 발생을 줄이고 작업자들이 목숨을 잃는 일은 없어야겠다.

까치는 여전히 아침을 열고 햇살도 여전하다. 거실 깊숙이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책장을 넘기는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아 좋다. 과수원에 대한 향수는 남아있지만 누군가는 새롭게 지은 집에서 행복할 것이다.

10년을 넘게 일해도 집 한 채 마련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에서 생애 첫 집을 장만한 사람도 있을 테고 좀 더 나은 집으로 옮겨 앉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새 집에 입주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보낸다.

철근과 콘크리트 사이에 담겨있는 배꽃향기와 꽃이 피면 초례청을 차리던 벌과 나비의 날갯짓처럼 나름으로의 꿈을 실현하며 순간순간의 행복을 지키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전진할 것이다.

새해가 밝았다. 우리는 희망을 말하고 열심히 살아보자고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새로운 다짐을 한다. 올 한해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만만찮은 해가 될 거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신발 끈 동여매고 단단한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해보자.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다보면 크게 웃을 수 있는 순간순간이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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