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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시속 1㎞

 

카페 델문도는 활짝 피어 있었다. 함덕 해변을 끼고 사람들의 발소리, 웃음소리로 채워진 공간. 쉼 없이 굴러다니는 빵 굽는 냄새, 커피 향, 창 밖 철썩대는 파도 소리까지. 여행은 그렇게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걸까. 델문도 안의 환한 얼굴들. 음악이 출렁거리고 기대와 흥분을 적절하게 섞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꽃. 석양을 기웃거리는 카페 델문도는 그렇게 꾸밈없는 한 송이 거대한 꽃이었다.

“해지기 전에 빨리 출발하자. 호텔까지 1시간은 걸릴 것 같아.”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하자 마음이 급해진 우리는 카페를 나와 서둘러 숙소로 향했다. 산간도로는 가지 말라던 렌트카 직원의 주의사항을 생각해서 해안도로를 선택했다. 딸아이는 분위기에 취해 눈길에 자동차의 속도감이 떨어지거나 말거나 “저녁에는 올레시장에 가서 맛있는 것 사먹을까, 아니면 다른 맛 집을 한 번 찾아볼까”라며 떠들어대다가도 무슨 영화 속 장면 같다며 휘몰아치는 눈을 동영상으로 찍어내기까지. 하지만 수위를 넘어서는 흥분에 겨운 수다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서귀포에 있는 숙소를 가기 위해 중간에 우리는 도로를 변경하였다. 조금 전의 도로와는 사뭇 다른 풍경. 꽝꽝 얼어붙은 빙판길, 계속 쏟아지는 눈, 휘몰아치는 바람, 점점 더 심해지는 폭설, 폭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도로로 진입한 지 한참이 되어 되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 그 도로는 가능하면 사용하지 말아야할 중산간도였던 것. 체인을 제대로 감을 줄도 모르는 두 여자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고 위험한 도로였던 것이다.

중앙선을 가로질러 부서진 채 나뒹구는 자동차들이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차들, 갓길에 세우고 체인을 감는 사람들, 자동차를 버리고 히치하이킹을 하는 사람들, 렉카를 부른 사람들. 반딧불이처럼 비상깜빡이를 꽁무니에 달고 줄지어선 차들은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시속 1킬로미터를 가다가 멈추어 서고 다시 시속 1킬로미터를 가다가 멈추는 반복행위. 아무리 갑자기 내린 폭설이라지만 제설작업을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자치 시를 원망하기까지. 하지만 원망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우리도 정신을 가다듬고 시속 1킬로미터의 속도라도 차분하게 전진해보기로 했다.

“무사히 도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못 오신 분이 너무 많거든요”

우여곡절 끝에 출발한지 6시간 만에 기어이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옆 편의점까지 문이 닫혀 꼼짝없이 내일아침까지는 굶어야 하는 상황.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이렇게 살아있는 걸, 너무 멋지지 않니?”

나는 계획한 한라산 눈꽃을 못 봐도 아쉽지 않다고 했다. 하물며 돌아갈 때 비행기를 못타 며칠 더 묶여 있어야 해도 문제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들의 여행은 그만큼 아찔하고도 멋진 여행이었다. 어쩌면 ‘시속 1킬로미터의 안전한 전진’은 힘들 때마다 들추어보게 될 딸아이와 나의 듬직한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내일이면 또 시끌벅적한 일상 속으로 나는 걸어갈 것이다 ‘시속 1킬로미터의 안전한 전진’을 마음에 담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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