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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더이상 생경(生硬)하지 않은 단어 ‘죽음’

 

10개월 전인 지난해 3월 고교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이사관으로 공직을 퇴직한 선배의 목소리는 아주 다급했다. “집사람이 폐암 4기래! 날벼락을 맞았어. 기도 좀 해주시게~”. “여자가 폐암이면 가스렌지를 평생 써 온 원인이 많다고 들었어요. 우리집도 전기렌지로 바꿨으니 지금이라도 해봐요”. 며칠 뒤 내가 시킨 대로 시집 간 딸 둘까지 주방을 바꿔줬다며 전화를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듯하다. 그런데 며칠 전 그 선배 부인의 부음을 들었다. 10개월의 투병기간 정성을 다 했지만 호스피스 병동에서 10여 일 남짓 있다가 운명했다는 것이다. 상가에서 본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허망해보였다. 항상 일벌레처럼 일하던 그 선배는 퇴직 후 모처럼 아내와 단란하게 살아가던 중이었으니 더욱 그랬으리라.

30여년을 훨씬 넘도록 같이 부대끼며 살아왔던 ‘옆지기’가 세상을 떠났다는 현실에서 그 선배는 얼른 실감이 나지 않았을 듯하다. 그는 크리스찬으로 부활의 신앙으로 이를 극복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어 다행이다. 나 역시도 몇 년 전 부모님을 잇따라 여읠 때만 해도 전혀 나에게는 닥치지 않을 일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믿기 어렵다. 늘 곁에 함께 하던 가족들의 흔적은 우리의 뇌리속에 강하게 자리하기 때문이다. 요즘들어서는 주변 사람들의 부음을 들으면 부쩍 ‘죽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된다. 세상을 떠나는 지인들이나 특히 암으로 고생하는 환우들을 보면 더 그렇다. 비관적인 생각인지는 몰라도 이제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적다는 현실에서 죽음의 단어가 더욱 생경(生硬)하지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얼마 전 갑자기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교우의 아버지 얼굴도 떠오른다. 몇 년 전 50의 젊은 나이에 백혈병으로 죽은 후배의 얼굴에서부터 돌아가신 부모님의 얼굴까지 오버랩되어 나타난다. 나의 마음속에선 그들은 여전히 활짝 웃는 얼굴로 다가온다. 아직도 그 사실이 믿겨지지 않은 채…. 그러나 죽음은 누구에게라도 다가오는 현실이다. 나에게는 없을 일이라고 망상 속에 젖어있지만, 먼 미래의 일이라고 까맣게 잊고 있지만 그건 정해진 바다. 부귀영화를 누리던 진시황도 늙지 않기 위해 불로초를 찾느라 기를 썼지만 헛수고였다. 단지 죽음은 우리에게 아직 해결되지 않은 화두여서 인간에게 영원한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죽음 앞에 관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때다. 웰빙(Well being)의 시대를 넘어 웰다잉(Well dying)도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보다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가 많이 오고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끔찍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지금의 삶을 돌아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갖게 해주는 활력소가 될 수 있다. 15년 전쯤 교회 여름 수련회에서 매장체험을 했다. 숲속에 관을 만들어놓고 한명씩 들어가 대못질도 하는 퍼포먼스였다. 관 속에서 ‘당장 죽으면 어떻게 될까, 무엇이 아쉬울까,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긴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죽음을 통해 얻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명상에 잠겨보았다. 마치 20여년 전 개봉했던 ‘파니핑크’라는 독일 영화의 주인공처럼. 영화 속 여주인공은 죽음을 준비하는 강좌를 들으면서 유서를 쓰고 관에 들어가 묻히는 연습을 했다. “시계를 차지 마. 지금의 시간만 가져!”라던 유명한 대사도 남겼다.

이제 죽음에 대해 더 많이 말하자. 그리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임종의 시점에 내가 섰을 때를 가정해보며 지금 내가 하는 일, 사람을 대하는 일들에 대해 겸허하고 관대한 생각을 하자.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벌거벗은 가난한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관대하고 손해보며, 축복해주며 살자고 다짐해본다. 생사불이(生死不二)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고 하나다. 결국 잘 산다는 것은 아름답게 죽는 일이다. 주위 사람들의 애도 속에 세상과 이별하는 것 또한 멋지게 살아왔다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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