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만
가을은 저절로 깊어지는 게 아니더라
여치는 풀잎에 가슴을 문대며
감나무는 달빛에 얼굴을 부비며
달님은 호수에 몸을 씻으며
서로가 서로의
가슴으로?
등으로?
깊어지더라 깊어지더라
나의 호수도 너의 하늘에
너의 하늘도 나의 호수에
-고종만 사집 ‘화려한 오독’에서
사람 역시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게 되어 있다. 세월이 흐르면 여치와 풀잎처럼, 감나무와 달빛처럼, 달님과 호수처럼 서로에게 몸 비비며 녹아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단한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뜻을 펼치기 어렵다. 결국에는 사람의 문제이고, 얼마나 사람 속에 녹아드느냐가 인생 성패의 열쇠이다. 나를 버리지 않고도 타인에게 녹아들 수 있다는 것, 마치 나를 버린 것처럼 타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삶의 지혜이고 세월의 가르침이다.
/장종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