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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우리 순자여사

 

유리창에 성에가 꽃처럼 앉은 가게, 이글루처럼 하얀 방에 갇혀 아침을 먹는다. 스토브를 강으로 켜고 누룽지를 끓여 후후 불면서 먹어도 여전히 추운 날이다. 어머니는 일찌감치 성당에 가셔서 간단히 먹고 치운 뒤 녹지 않는 하얀 유리창을 바라보며 보이차를 마시는데 얼어붙은 문을 드르륵 소리가 요란하게 들어오는 나풀거리는 털모자를 눌러쓴 보라색 잠바가 보인다.

하도 오랜만이라 일부러 들렀다며 김밥을 내려놓는다. 보나마다 아침을 안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같이 먹으려고 사왔을 터인데 우리가 차를 마시고 부득이 차를 마시고 싶다고 한다. 지독한 감기 몸살로 며칠 장사도 못하고 누워 앓다 그만해서 나왔다는 얼굴은 추위에 더 핼쑥하고 염색을 할 시기를 놓친 머리는 하얗게 들고 일어난다.

어릴 적 친정에서도 고생으로 자라더니 결혼해서도 고생길의 연속이었다. 젖먹이를 시어머니께 떼어놓고 남편과 둘이 얼마 안 되는 농사에 매달려도 손에 쥐어지는 거라곤 없어 쪼들리는 살림 펴볼 날이 없었다. 거기다 시어머니마저 치매에 걸려 순자여사를 더 고단하게 했다. 돌아가실 무렵 정신이 돌아와 괜히 촌에서 고생하지 말고 너희들은 시내로 나가 살라는 시어머니 유언대로 나가 살 결심을 하고 남편은 면사무소에 자리를 얻어 나가고 순자여사는 학교 급식 조리실에 조리원으로 취업을 해 열심히 일을 했다.

힘든 일은 남보다 먼저 하고 몸을 아끼지 않고 일을 해서 교장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으나 천성이 착한 사람이라 모두들 좋아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우리 집에 가게를 시작했다.

솜씨 좋고 인심 좋은 사람이라 가게는 밥 먹을 새도 없이 잘 되고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불러서 어떻게 알았는지 물이라도 마시고 가라고 하면서 즐겁게 일을 했다. 그러나 지나친 과로는 더 이상 말을 듣지 않는 주인을 용서하지 않았다.

척추 디스크가 터져 수술을 하면서 잠시 쉬다가 다시 일을 하면서 몇 해를 버티더니 좋은 소식이 들렸다. 목 좋은 장소에 나온 건물을 사서 주상복합 건물 신축을 하고 유행하는 저가 고깃집을 차리자 장사는 불티나게 잘 되어 비 오는 날엔 우산을 받고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개업 날이 지나 며칠 있다 찾아가니 여전히 바쁘다. 정말 잘 돼서 좋다고 하면서 수저라도 닦아주려고 하니 어느새 달려들어 빼앗으며 눈물이 글썽해서 말을 한다. 우리 집에서 애들 셋 대학 가르치고 집장만 하고 종자돈 모아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고 평생 언니 잊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이다.

남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은 많이 있다. 그러나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예수님 시대에도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은 열 명이지만 다시 찾아와 감사함을 전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아침마다 그 집 앞을 지나가며 들여다보면 반갑다고 손짓을 하는데 며칠 째 불이 꺼져 있어 내심 궁금했는데 오늘 겨우 감기치레를 털고 난 사람이 김밥을 사들고 와서 언니는 절대 아프지 말고 살라고 손을 잡고 당부를 하고 떠나가는 뒷모습이 애처롭다.

비단 나에게 잘해서만이 아니라 언제나 남에게 한 없이 너그럽고 자신에게 엄격한 보기 드문 사람이라 더 정이 간다. 친동생처럼 다정한 우리 순자여사 앞에 이젠 꽃길만 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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