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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재난의 반복을 끊으려면

 

지난달 26일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40명이 사망하고 151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종로 서울장여관 화재로 6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한 지 6일 만이었다. 이틀 뒤에는 불광동 미성아파트 화재로 일가족 3명이 희생되었다. 한 달여 전인 작년 12월 21일에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당했다. 재난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겨울철이니 크고 작은 화재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런 재난들을 당연히 받아들일 저개발국이 아니다. 세계 10위권 경제규모로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맞고 있다. 행려병자 시신이 종합병원의 교육용으로 부족함이 없던 그런 시절이 아니다. 누구든지 생명이 존중되고 보호될 뿐 아니라 동물의 생명까지도 존중받는 그런 세련된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런 재난과 인명피해가 반복될까?



법에 따른 시설과 장비를 갖출 뿐 아니라 규정을 지켜야

밀양 화재에서 많은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당국에 따르면 세종병원은 2006년 1·4·5층에 147㎡규모의 불법 건축물을 설치했다고 한다. 발화 지점으로 지목된 환복 및 탕비실은 본래 설계 도면에 없던 곳이다. 불법 증축으로 기존 전기 배선을 바꾸면서 전기적 문제를 일으키고 환자들의 대피에 장애가 됐다고도 한다. 밀양시청은 불법 건축물 12곳에 대해 2011년부터 23차례에 걸쳐 원상복구 명령과 이행강제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6년 동안 3천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내면서 버텼다. 제천 화재 역시 불법 증축이 문제였다. 2010년 사용승인 때는 7층이었으나 불법 증축을 통하여 작년 화재 당시에는 9층이 되었다. 2014년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때도 불법 증축이 한 원인이었다. 불법 증축만이 아니다. 밀양 화재 당시 2·3·5층의 방화문이 열려 있어 사상자가 늘었다는 지적이 있다. 두 번째 도착한 소방차의 소화기에서 2분 46초간 물이 나오지 않아 초기 진압에 차질을 빚었다는 말도 있다. 또 정전 시 직접 조작해야 하는 수동식 비상발전기가 있었으나 감식 결과 작동 흔적은 없었다고 한다. 정전으로 정지된 엘리베이터에서만 6명이 숨졌다. 화재 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한편 불광동 미성아파트 화재에서는 소화전 배관 스위치가 ‘수동’에 놓여 있어서 중앙 펌프가 작동하지 않았다. 소화전을 잠근 것은 소방법 위반이다. 이밖에도 규정을 지키지 않아 인명피해를 키운 사례는 많다.



법과 원칙을 지키는 의식이야말로 미래세대에 물려줄 유산

밀양 화재 후에 정부는 방지대책을 약속했다. 작년 12월 3일 15명이 숨진 인천 영흥도 낚싯배 전복사고 때도 정부는 초기대응의 미흡을 인정하고 사과하였다. 제천 화재 때도 같은 사과를 한 바 있다. 그 방지대책이 언제쯤 시행되어 우리 생명을 지켜줄까? 문제점을 몇 단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우선 방재시설의 미흡을 들 수 있다. 기준들이 많이 높아졌지만 이전 시설들에 소급적용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기존 시설에 당장 적용되도록 국가재정과 사회적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이는 경주와 포항 지진 때 실감한 바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현재 있는 법과 규정을 잘 지키는 일이다. 건축 및 소방 관련 규제는 나름대로 잘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이런저런 핑계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설마 내게 그런 일이 닥칠까 하는 안이한 생각이 재난과 인명피해를 반복하게 만든다. 대통령이나 담당 공무원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법과 원칙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국민의식이야말로 미래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가장 큰 유산이다. 이게 확립되고 체질화될 때까지 재난과 인명피해는 계속될 것이다. 최근 정치권 개헌논의에서는 지방선거와 집권가능성이 가장 큰 관심사로 보인다. 하지만 현행 헌법에 거명조차 안 된 법치주의(법치국가)를 천명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다행히 지난 3일 신촌 세브란스 병원 화재는 스프링클러와 방화벽이 잘 작동하고 직원과 환자들이 질서있게 대피하여 큰 피해 없이 끝났다. 완벽하지는 못해도 우리 사회가 아직 실망하거나 포기할 단계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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