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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눈보라가 퍼붓는 방

눈보라가 퍼붓는 방

/신현림

눈보라는 방에도 퍼부었다
몸까지 들어찬 눈보라를 토하였다
자식과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밀어냈다
눈보라는 자세히 볼수록 흉기였다
눈보라에 베이고 파묻혀도 나는 타오르고 싶었다
나를 태워 눈보라에 갇히는 나를 잊고 싶었다

눈보라가 언제 걷히나 언제 빛이 보이나
눈보라가 설탕이라고 쓰자 달콤해지기 시작했다
힘들다 씀으로써 나는 조금씩 마음이 편해졌다
빛이 보인다고 씀으로써 빛이 느껴졌다
누구나 살아남기 위한 죄수의 인생이라 나를 타일렀다

눈을 감으면 나 자신이 풍경으로 보였다
눈보라를 멀리 보기 시작했다
눈보라 속에서
해가 펄펄 끓고 있었다

-시집 ‘반지하 앨리스’


 

 

 

눈보라 퍼붓던 시골 등굣길이나 하굣길이 생각납니다. 변변한 입성을 갖출 수 없었던 시절 살을 에는 추위와 더불어 마구 불어 닥치는 눈보라를 온몸으로 맞던 시오리 먼 길, 그러나 가슴에는 희망의 불씨를 발갛고 따스하게 피웠던 때였습니다. 시적 화자는 그 눈보라가 방에도 몸에도 들이닥친다고 합니다. 얼마나 스산한 삶이기에 그 가차 없는 무차별적 폭력으로 전신을 때리는 눈보라를 방으로 몸으로 견뎌야 했을까요? 그야말로 필사적으로요. 그렇지만 고통도 때로는 달콤한 유혹이 되는 때가 있지요. 한 송이 꽃도 고통의 순간을 통과하지 않고는 찬란한 개화의 순간을 맞을 수 없겠죠. 그러니 눈보라는 그저 혹독함이 아닌 생의 적절한 밑간이라 여겨도 되겠지요. 우리가 눈보라 속에서도 얼핏얼핏 먼 산 설경에 취한 적 있듯이, 눈보라 속에서 나 자신이 풍경으로 보이는 제3자적 시선을 획득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일체유심조라 하지 않던가요.

/이정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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