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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평창, 축제 속으로

 

아니, 이런 보너스라니!

내가 앉은 바로 앞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선수들이 캐나다 선수들과 컬링경기를 하고 있다. 하얀 얼음판위를 정교하게 날아다니는 스톤들의 춤사위. 날렵하게 또는 유유히 미끄러져 아슬아슬하게 파고드는 작전. 기묘한 각도로 상대를 밀어내고 안착하는 기술. 연거푸 쳐 내는 상대의 집요한 공격. 어떤 그림이 펼쳐질지 가늠하기는 참 어려웠다. 마치 오늘 내가 그린 이 그림처럼 말이다.

어제 오후부터 적극적으로 시도한 입장권 구하기.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이라니 마치 나의 사명인 것처럼 꼭 가보고 싶었다. 스포츠 광이어서도 아니고 관계자는 더더욱 아니었지만 단지 세계인의 축제, 그 중심에서 그들과 더불어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을 뿐. 밤 12시가 넘어서야 손에 쥔 누군가가 포기해준 너무나 소중한 입장권. 우리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5시에는 출발해야 했다.

횡성 휴게소를 11킬로미터쯤 남기고 산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사면을 둘러친 산, 그 어디쯤에서 해가 뜨고 있는지는 도무지 모를 일.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다시 바라보았을 땐 이미 해오름 앞에 하얗게 눈 덮인 산들이 제 몸피를 켜켜이 토해놓고 있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이른 아침 고속도로 휴게소의 뜨거운 커피와 설산머리를 벌겋게 물들이는 신비롭기까지 한 해오름, 올림픽경기를 보기위해 새벽을 달려온 휴게소의 뒤섞인 내국인, 외국인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나는 이미 축제의 심장근처까지 깊숙하게 들어와 있었다.

북강릉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환승셔틀버스를 타고 단숨에 경기장으로 갔다. 누군가 외치기 시작한 ‘대한민국’이라는 선창에 맞춰 연거푸 박수를 치며 한 마음이 된 컬링 경기. 우리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정당하게 싸운 경기가 끝나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승리한 상대 팀을 축하해주는 장혜진·이기정 선수를 보았다. 올림픽에서의 승리 이전에 참가 자체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고, 정복하는 것에 앞서 잘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구현하는 세계인의 축제라는 올림픽 정신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축제의 중심에 있는 한 낮의 강릉시내는 경기장과는 달리 사뭇 조용하고 깨끗했다. 차량이부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그런지 한적한 시내를 걷고 있는 외국인들의 표정 또한 평화로워 보였다. 이른 점심을 먹고 걸어 나온 거리에선 축제에 동참하는 어르신들의 신명나는 사물놀이 한마당이 벌어지고 있었다. 역시, 축제엔 리듬장단에 맞는 춤판이 빠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바탕 어깨춤을 거쳐 들른 조용한 카페.

햇살에 맨 살 내어놓은 창을 등지고 마시는 커피는 늘 향긋했다. 두런두런 사람소리가 들리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때로는 음악이, 때로는 커피가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만 오늘만큼은 나 그리고 평창 올림픽이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분명 피를 말리는 경쟁이었음에도 승리한 상대팀에게 손 먼저 내밀던 멋진 우리 선수들의 표정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었다. 돌아오는 내내 올림픽에서뿐만 아니라 평범한 내 인생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이를 위해 분투하는 것이고, 경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삶 그 자체에 의의가 있는 것이고 본질은 누군가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잘 싸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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