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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양심]헤르만 헤세의 양극성을 넘어서는 유희

 

사람의 삶은 대립과 갈등의 끊임없는 연장선이다. 타고난 성품과 환경, 교육의 차이로 각자의 개성은 달라진다. 성장기에는 다른 개성들 간에 서로 부대낌을 통해서 ‘다름 속에서도 같음의 요소’를 점차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내며 사회화 과정에서의 보편적인 의식구조를 확장해간다. 이러한 ‘다름과 같음’의 순환과 융합과정이 원활하다가도 성인이 되어 나름의 가치관이 정립되고서는 새롭게 다가오는 ‘다름’에 대한 수용력이 점차 줄어든다. 정도가 심해지면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날 ‘다름’의 공감여지를 일체 차단하고 ‘다른 자’에게 반사적 공격행위를 할 정도로 굳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대립적 양극성과 갈등의 극복문제를 생각할 때면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가 떠오른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인에게 지속적인 사랑을 받아온 그의 작품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절망과 방황의 청소년 시기에 공감과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저작활동 초기부터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말년의 대작 ‘유리알 유희’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다루었던 주제가 바로 대립적 양극세계 속에서 그것을 극복해가는 인간의 길 탐구였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 설정에서도 지성적인 ‘나르치스’와 감성의 대변으로 ‘골드문트’, ‘싱클레어’와 ‘데미안’ 그리고 유리알 유희에서 ‘요셉 크네히트’와 ‘플리니오’ 등을 대칭적으로 등장시켰다. 이들은 흡사 서로 다른 두 개의 선율이 합주를 통해서 불협화음에서 협화음을 이루어가듯 변증법적 발전과 조화를 헤세는 묘사해낸다. 특히 10년 이상 집필한 말년의 대작에서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미완성 마지막 작품인 ‘푸가의 기법’을 염두에 둔 가상적 놀이기구인 유리알 유희를 창안하여 전체소설의 정점에 두었다. 때문에 주인공 크네히트의 성장과정은 대위법적 음악처럼 대립적 존재들이 서로 다른 삶과 접하고 유희하며 하나의 정신으로 승화되는 여정이다.

헤세는 바흐의 ‘푸가의 기법’을 두고 “모든 시대를 망라해서 서양음악이 만들어 낸 최고의 완벽한 작품”이라고 큰 의미를 두었다. 그의 이러한 극찬의 이유는 어떠한 절망과 고난 속에서도 명랑성과 용기를 잃지 않으며 중심을 향해 그리고 신성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갈 수 있게 하는 바흐의 신비로운 위안 때문일 것이다.

양극을 넘어서는 유리알 유희에는 또 다른 중요한 도구가 있다. 그의 일기장에서는 다음의 글을 찾아 볼 수가 있다. “내 침상의 머리맡에는 항상 주역 책이 놓여있고 나는 잠자기 전에 한 페이지만 읽고 잠든다”

다독 다작가로 유래 없는 헤세가 취침 전에 한 페이지를 본다는 의미는 64괘 중에 한 괘상을 임의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크 음악 예찬자인 그는 아마도 선택된 괘를 가지고 대칭적인 또 다른 괘를 떠올리며 흡사 64괘를 음군(音群)으로 삼고 푸가연주를 하며 명상에 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소설 유리알 유희에서는 도가의 인물을 상징하는 ‘노형’이 주역의 대가로 등장하며 육효(六爻)를 뽑는 과정이 묘사되기도 한다. 그리고 소설의 주요 전개대목에서는 여러 자연의 묘사를 통해 주역의 괘상들을 상징적으로 심어두었다. 헤세는 그의 마지막 대작 속의 핵심개념인 유리알 유희에 관해 추상적 개념만 소개할 뿐 실체를 단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소설 유리알 유희는 주역의 64괘를 음군으로 삼고 바흐의 미완성 푸가의 기법을 언어로 연주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헤세에게는 일찍부터 모든 대립들을 넘어선 궁극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또한 그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변화의 전제로 자신의 내면 속에 이미 대립적인 ‘다름’이 공존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두 개의 ‘다름’을 포괄하며 더 큰 가치를 찾아가는 ‘열림’의 자세를 강조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한 치의 양보 없는 대립의 현상이 심각하다. 그 서로 ‘다름’에는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고 더욱 잘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만큼은 ‘같음’일 것이다. 이 땅에 더 넓고도 높은 큰 가치로 서로 ‘다름’들이 크게 하나되는 지혜로운 소통의 유희를 벌여볼 때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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