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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참 곱다. 칙칙함을 벗어던진 나무에 푸릇한 기운이 돌고 꽃망울을 꺼내든 나무도 간간히 보인다. 거리엔 웃자란 가로수의 가지를 쳐내는 엔진톱날 돌아가는 소리 요란하다. 이미 농경이 시작된 들녘에도 활기가 넘친다. 과수에 두엄이 뿌려지고 논을 갈아엎으며 풍작을 기대한다.

따사로운 햇살에 적당히 스미는 한기가 야외활동하기에 좋은 날씨다. 바구니와 호미를 들고 들녘으로 나섰다. 아직은 잔설이 남아 미끄러운 곳도 있지만 들로 산으로 나서면 기분도 상쾌하고 마음도 가볍다.

냉이를 캤다. 잎은 작아도 뿌리가 제법 깊다. 저것들 봄을 밀어올리기 위해 겨우내 뿌리로 양분을 저장하며 몸을 키웠나보다. 뿌리에서 풍기는 향이 좋다. 깨끗이 손질해서 멸치 육수에 된장과 고추장 풀어 냉잇국 끓이면 저녁 밥상은 푸짐하겠다.

늙어가면서 끼니 때마다 반찬 투정하는 남편이 얄밉다고 투덜대는 일행의 투박한 입담으로 너른 밭이 수다와 웃음으로 왁자하다. 냉이보다 더 오소소 쏟아지는 푸념이 맛깔스럽다. 남편 흉보고 자식들 걱정도 한다. 갱년기 불면증으로 잠이 안 온다는 말에 기다렸다는 듯 봇물처럼 터지는 하소연이 바구니에 넘쳐난다.

삐끗했는데 발목에 금이 가서 두 달 깁스하는 동안 남편 부려먹는 재미가 쏠쏠했다는 친구의 말이 압권이다. 처음 며칠은 식사준비에 집안일까지 다해주더니 일주일 지나면서부터 슬슬 꽤가 나는지 웬만하면 움직여보라고 눈치를 주더란다.

미안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해서 대놓고 펑펑 울었단다. 시집 와 삼십년 넘게 시부모 모시고 종갓집 맏며느리 노릇하느라 갖은 힘든 일 다 하면서도 팔자려니 하고 살았는데 겨우 열흘도 시중을 못 들어주고 눈치 주느냐고 퍼붓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며 깔깔대는 친구를 거들어 한바탕 웃고 나니 나른했던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우리는 봄도 캐고 수다도 캤다. 바구니에 나물이 쌓이는 동안 스트레스를 날렸다. 겨우내 뿌리로 깊어졌던 나무가 잎을 꺼내고 꽃을 꺼내듯 땅의 기운을 받으며 답답했던 마음을 비워냈다. 더러는 위로해주고 더러는 맞장구를 쳤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우물가에서, 빨래터에서 소문을 만들어내고 그 발 없는 말이 천리를 달려 때로는 불화의 씨앗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마음의 갈증을 풀어내며 살아가는 돌파구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 어머니들의 모습을 우리들에게서 본다. 주거니 받거니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위안이 되고 보탬이 된다. 콧등이 시큰할 때 같이 울먹이고 별것도 아닌 일에 배꼽이 빠질 듯 웃다보면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지천명,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고 했던가. 아직 이해할 수는 없는 말이다. 설령 조금은 이해한다고 해도 실천은 어렵다. 머리가 하는 주문을 가슴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가슴이 하는 일을 머리가 이해하려 들지 않을 때가 많다, 마음의 나이보다는 몸의 나이가 삐걱거리기 시작했음을 느낄 뿐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 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을 다시금 새겨본다. 움츠렸던 생각을 열고 봄의 거리로 나서보면 나무는 허공을 밝히기 위해 숨 가쁜 펌프질을 할 것이고 계절은 계절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자연이라는 거대한 궤도에 순응하며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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