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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사회]이제는 사회가 답을 해야할 때다

 

현직에 있는 서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의 실상을 고발하면서 한국사회에 끊임없는 피해를 경험한 여성들의 말하기가 이어지면서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그 후 여기저기에서 인터뷰 요청이 오지만 응하지 않고 있다. 마치 처음 이슈화 된 것처럼 확 타버리는 일시적인 현상처럼 대하는 언론과 사람들의 태도가 너무 아쉽다. 미투 운동(영어: Me Too movement, #MeToo)은 2017년 10월 미국에서 하비 와인스틴(Harvey Weinstein)인 미국의 영화 제작자에 성추행 행위를 비난하기 위해서 소셜 미디어에서 해시태그를 다는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과연 ‘미투’로서 처음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의 말하기가 처음 시작된 것일까?에 대한 질문을 해고 싶다.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의 말하기는 계속해왔다. 1980년 민주화 운동 시기에 여성의전화는 1983년 ‘아내구타’ 문제를 시발점으로 성폭력, 성매매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려왔었고, 여성폭력방지법(가정·성폭력, 성매매)이 제정하게 되었다. 그 뒤에는 피해를 경험한 여성들의 말하기가 있었기에 가능 했다. 여성폭력은 여성에 대한 차별의 극단적인 표현이며, 여성의 생명권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심각한 인권 침해인 동시에 사회적 범죄행위라고 매일 말해 왔었다. 하지만 사회는 그동안 가해자 언어의 둘러싸여 그 말의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도리어 용기를 내어 그 어려운 말을 한 피해자들을 비난하고 외면해 왔었다. 법이 제정되고 여성들의 인권이 향상이 되었을 거라는 기대는 한국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가부장제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시장 안에서 더 여성들을 성적대상화 하면서 여성들의 인권이 향상되지 않았다. 2018년 지금 새로운 이슈가 아니라는 사실과 한국사회에 ‘미투’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성찰보다는 계속 폄하하고 용기를 내고 말을 한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의심하고 더 나아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전혀 성찰이 보이지 않는다. 가해자들의 특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과’보다는 말을 한 사람들에게 ‘팬스룰’을 치고 있는 현상들의 기사를 볼 때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아직도 성찰을 통한 반성이 없다는 것에 답답하기만 하다.

얼마 전(3월8일) Jtbs에서 18년 전 중학생일 때 선생님에 의해서 성추행을 당한 사건이 보도 되었다. 대학생이 된 피해자에게 사과하겠다는 자리에서 그 교사는 ‘하나님이 용서를 했으니 네가 나를 정죄할 수 없다.’는 말을 하였다는 보도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희롱, 성폭력 등 여성(젠더)폭력은 성별 위계가 존재하는 ‘권력’, ‘특권’의 문제인 것이다. 성폭력 여성(젠더)폭력은 성별 권력관계와 상관없이 발생하지 않는다. 가해자들은 가해한 행위 자체를 가볍게 여기고 진정한 사과보다는 항상 자기의 변명으로 말문을 연다. 이러한 것이 용인되는 사회가 우리가 말하는 건강한 사회인가? 사회가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정인이 겪는 폭력이 아니라 이것은 나의 문제라는 시각과 그동안 용인하면서 침묵하게 만든 사회는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왜 이제 와서’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이 말하기를 하는 여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성차별적인 의식을 바꾸어내지 않는다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더 이상의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없다고 본다. ‘우리가 말하는 피해자는 없다’는 인식과 더불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를 한 사람들이 처벌을 받고 누가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경험한 그들이 용서를 해야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지금 여기에서 다시 사회가 성찰하고 변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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